추홍순(秋鴻順)

추홍순(秋鴻順)

추홍순(1894년생/금남면 대송리)

1919년 5월 5일 보안법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5월 선고

독립운동내용 : 이종인(李宗仁)·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추홍순(秋鴻順)·정의용(鄭宜鎔) 등 33인은 서울의 독립선언을 본받아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여 목숨을 바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古田面舟橋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주교리 장터에 6~700여명의 상인과 주민들이 모이자, 박영묵이 미리 만들어 놓은 태극기를 들고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장터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일신단원과 상인들이 일제히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열은 일본군 수비대의 무력으로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피해가 발생하자 보병 80연대 장교이하 10여명이 추가 파견되었다. 이들은 주동자 체포를 위해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로 진입하였다. 이때 마을주민의 피해가 크게 발생하였고, 박용묵, 이종인, 정상정, 정의용 등이 주동자임을 자처하여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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