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젊음을 보냈던 나의
30대 꿈은 지리산에 내려가서 사는것이었다.
20대중반.
군대를 전역하고나서 사촌 여동생의 꼬임에 빠져 시작한
연극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았다.
대학을 다니며 야간에 연극연습을 하러 대학로(혜화동)와 삼선교를
누비며 청춘을 불살랐던 그때도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것은 지리산이었다.
어릴때부터 산을 좋아해서 북한산, 도봉산은 가끔 애들 데리고
버스타고 다니기도 했는데, 고3때 처음 지리산을 갔고,
군대에서 천리행군 하면서 지리산을 두 번째 지나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지리산이 어떤 산인지 관심도 없었고
서울에서 너무 멀다보니,, 한번 가기도 어려워 언감생신 꿈에도
생각 못하다가,
군대를 제대한 기념으로 단디 무장하고 화엄사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그날.
말도 안되는 엄청난 것을 지리산 노고단에서 목격했다.
감히 어디서 그런 광경을 볼것인가.
난 분명히 산에 올라갔는데,
거기서 만난 건 바다였다.
노.고.운.해.
그때의 그 광경은 뭐라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암튼, 그렇게 해서 지리산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로 틈만 나면 지리산에 가다보니,
내 꿈은 저절로 지리산으로 내려가서 사는 것이 되어버렸다.
여자도 필요 없었다.
선을 보던,, 우연히 만나던,, 대부분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어찌그리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던지...
그래. 이게 내 운명이가보다. 난 산과 결혼하는거야!
참 히안하다..
33살 10월경 그렇게 난 모종의 계획을 했다.
33살 12월 31일 밤 11시 59분에 부모님 몰래 하직인사 드리고
야밤도주해서 지리산으로 내려가 살려고 했다.
헌데, 찾을때는 그렇게 안 나타나더니,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하나...
33살 11월 3일.
우연히 가게 된 산에서 만난 여자.
나보다 8살이나 어린 25살의 여자.
그녀는 나만큼, 아니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산을 좋아했다.
게다가 내가 속으로 좋아한 그 어린 여자가 나도 좋아한단다.
하는 수 없이 프로포즈를 했다.
“지리산을 사랑하고 남은 사랑을 죄다 줄테니 나랑 결혼하자”
이게 무슨 개뼈다구 같은 소리냐..
그래도 이 여자 좋단다.
나 참,, 이거 어쩌지...
어쩌긴. 결혼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듬해 34살, 26살로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지리산 피아골에 갔다.
고인이 되신 함태식 어르신이 왕시루봉 선교사별장에 계시다가
몸이 쇠하셔서 피아골 대피소에 내려와 계실때다.
이후로도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산이었다.
시간이 되면 지리산, 아니면 서울 근교산.
그러면서 백두대간도 하고, 정맥도 하고,,
뭔 이야기가 꿈 이야기하다가 죄다 산 이야기 뿐이다냐...
결혼하고 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딱 5년 있다가 지리산으로 내려갈거다.
오케이 한다. 그짓말로 생각했겠지...
우리는 21세기가 시작하는 첫 해.
2000년에 결혼했고, 난 말을 뱉은데로 2005년에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 악양면으로 내려왔다.
밑도 끝도 없이. 연고도 없고 돈도 없고, 땅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서 살던 전셋돈과, 당시 내가 하던 체육관을 처분한 돈.
딱 7천만원으로 우린 지리산 삶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