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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유엔가입총궐기대회

한국은 1949년 1월 유엔가입 신청 이후 여러차례 유엔가입을 추진해 왔다. 유엔 가입을 위한 활동은 1956년 9월 27일, 하동군을 포함한 전국적인 유엔가입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같은 해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맞아 전국적으로 유엔 가입을 촉구하는 대규모 행사들이 열렸다. 이날 하동읍에서 열린 유엔가입총궐기대회와 가두행진이 이 행사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유엔가입은 1991년에야 실현되었다. 탈냉전으로 인한 국제여건 변화 속에서 남한과 북한 동시 유엔 가입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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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6년 유엔가입총궐기대회
  • 1956년 유엔가입총궐기대회
1956.10.24 839

1957년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행사

1957년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식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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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3.1. 삼일절기념식광경
  • 1957.8.15. 광복절기념식광경
1957.03.01 832

1961년 재건국민운동

"재건국민운동(再建國民運動)"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1964년까지 국가 주도로 전개된 국민 계몽 운동이다. 1961년 6월 11일 제정된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재건최고회의(5.18.군사혁명위원회에서 명칭변경) 산하에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설치되었고, 전국 각지에 지부가 구성되었다. 하동읍 광평리에 남아 있는 푯말을 보면, 당시 마을마다 재건청년회와 재건부인회 같은 조직이 만들어져 정부의 정책을 알리고 교육 활동을 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구호 아래 절약·근면·협동 정신을 강조하고, 부패 척결, 청소년 선도, 질서 확립, 반공 교육 등의 활동이 추진되었다. 이후 새마을운동의 토대가 되었으나, 관제 운동이라는 한계로 인해 1964년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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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06.29. 재건국민운동촉진대회에 모인 주민모습
  • 1961.06.29. 재건국민운동촉진대회 가두행진
  • 1961.09.11. 경남계엄사무소 김용순소장이 수해지역현황과 말단행정 상황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하동출신이며,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이었다.
  • 1961.09.11. 경남계엄사무소 김용순소장이 수해지역현황과 말단행정 상황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하동출신이며,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이었다.
  • 하동읍 광평리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는 길옆으로 "광평 재건청년회 재건부인회" 푯말이 세워졌다. 1961~1964년 재건국민운동 조직사업으로 전국에 재건청년회, 재건부인회 등이 조직되었는데, 이 조직을 중심으로 교육사업이 이루어 졌다.
1961.06.29 968

1965년 일하는해 단합대회

1965년 '일하는 해' 추진을 위해 반상회에 마을 주민을 모아 교육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1965년을 일하는 해로 정하고 각 마을의 반상회를 통해 국민에게 정부 추진 계획을 교육했다. 이 정책은 박정희대통령 연두교서에 따라 시행된 것으로 그 해 삼대목표는 '증산', '수출', '건설'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에게 절약과 검소, 저축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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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02.16. 1965.신진마을잘살기운동 반상회모습 일하는해 신지리단합대회광경
  • 1965.02.15. 일하는해 사진첩-일하는해 읍민단합대회광경
  • 1965.02.16. 1965.신진마을잘살기운동 반상회모습 일하는해 신지리단합대회광경
  • 1965.02.16. 1965.신진마을잘살기운동 반상회모습 일하는해 신지리단합대회광경
  • 1965.02.16. 1965.신진마을잘살기운동 반상회모습 일하는해 신지리단합대회광경
1965.02.15 919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조국통일정책 심의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일부에 대한 선출기능을 가진 헌법기관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은 대통령이었으며,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원으로 구성되었다. 대의원 임기는 6년이었다. 1979년 10.26사태이후 헌법이 개정되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폐지됐다. 1972년 12월 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하동군은 12개 선거구에 13명을 선출했다. 1978년 6월 30일 초대 대의원 임기가 완료됨에 따라 1978년 5월 18일 대의원선거를 실시하여 10개 선거구에서 11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참고:하동군지,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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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03.28. 군정시책 대의원 간담회
  • 1977.12.30. 통일주최국민회의 대의원 간담회
  • 1978. 대의원 군정보고
  • 1978. 임기만료 초대 대의원 송별기념 촬영
  • 1978. 임기만료 초대 대의원12명에 군수님 감사패 증정
1977.12.30 6,227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박정희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를 통해 '새마을가꾸기' 를 처음 언급하면서 시작된 농촌부흥을 위한 국가정책사업이었다. 새마음 갖기(윗어른공경하기, 폐품활용, 근검절약과 저축 등), 공중질서확립(횡단보도지키기, 거리질서확립, 불량식품안만들기 등) 생활환경정화(자연보호, 내집앞 내가쓸기, 불법광고물 정비, 새마을대청소 등)운동으로 추진 되었다. 1974년부터는 소득증대를 위한 생산기반 조성사업을 확대하여 마을권을 벗어난 지역권 중심의 새마을 협동권사업으로 전개되었다. 보, 도수로 소하천, 소류지, 양수장, 제방, 교량 등 개보수와 마을간 농로개설. 확포장, 마을진입로와 안길 확포장사업 등이 집중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기초환경 개선사업으로 지붕개량, 취락구조개선, 주택개량, 부엌개량사업 등이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하동군의 초가지붕은 1978년에 완전히 없어졌다. 마을회관, 공동창고, 공동작업장, 복지회관, 경로당, 놀이터, 공동목욕탕 건립 등도 새마을운동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 졌다. (참고:국가기록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하동군지(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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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03.24.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
  • 1978.02.02. 78년새마을식량증산산주대회
  • 1978.02.02. 78년새마을식량증산산주대회
  • 1978.03.03. 78년새마을지도자 촉진대회(하동읍사무소)
  • 1978.01.30. 78년4H군연합회 연시총회
1977.10.22 19,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