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인 OO라고 합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달마다 시험을 본답니다. 다행히 지난 달에는 준비를 많이 한 덕분에 성적이 잘 나왔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본 이번 달 시험은 완전히 망쳐버렸지 뭐예요. 공부를 너무 안한 탓에 과목마다 5개씩 틀린 건 기본이고, 주관식 문제도 틀린 것이 더 많을 정도에요.
이 사실을 엄마가 아시면 난리가 날 텐데 어떡하면 좋죠? 벌써 며칠 째 혼자만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려니, 머리도 어지럽고 배도 아파지는 것 같아요. 눈치를 보니까 엄마는 이번 시험 결과에 대해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정말 큰일났어요. 선생님, 도와 주세요. ---------------------------------------------------------------------------------------------------------------------------------------------------------------------------------------------- 답변) 엄마ㆍ아빠랑 같이 식사를 할 때, ‘학원’이나 ‘시험’이라는 말만 나와도 가슴이 두근거릴 OO님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비밀을 숨기고 있느라고 얼마나 마음이 떨릴까 싶어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끝까지 혼자서만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용감하게 이야기를 해 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OO님에게 이런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먼 미래 같지만, OO님이 나중에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다음에 예쁜 딸을 낳았다고 생각해 보는 거에요.
좀 어색하겠지만 지금 OO님의 고민을 푸는데 도움이 되니까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OO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딸이, 어느 날 학원 시험을 엉망으로 망쳐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는 거에요. 그때 OO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시험을 망칠 수가 있어? 그러기에 공부하랄 때 공부해야지. 동네 창피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당장 집에서 나가버려!”
이런 말이 나올까요?(아마, 이런 이야기는 지금 OO님이 걱정하고 있는 말들일 것 같기도 하네요.) 아닐 거예요.
OO님의 마음에 떠오른 말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 예쁜 딸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아이, 속상해. 너무 속상하니까 막 화가 나네. 다음에는 더 잘하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줘야지.”
결국 OO님의 어머니도 OO님을 너무나 예쁘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고, 잔소리를 하는 거고, 야단을 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OO님이 밉기 때문에, OO님을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에, OO님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단을 치시는 건 절대 아닌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번의 시험 점수를 덜덜 떨면서 혼자 숨기고 있을 일이 아니지요? 당장 들어야 할 엄마의 잔소리 몇 마디가 두려워서, 그 안에 숨어있는 넓고 큰 엄마의 사랑을 놓쳐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