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인 OO라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 여름 방학이 오기를 정말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냐 하면 엄마가 ‘이제 겨울 방학부터는 완전히 중학생처럼 지내야 돼. 그러니까 노는 것도 이번 여름 방학이 마지막이다. 그런 줄 알고 신나게 놀아.’라는 말씀을 매일 하길래, 예쁜 색깔을 골라서 부분 염하셨거든요.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녔어요. 모처럼 용돈도 받아 친구들이랑 미장원에도 갔어요. 전 워낙 심한 곱슬머리라서 매직 퍼머를 꼭 해 보고 싶었고, 엄마도 그건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미용실 언니가 염색도 해 보라고 그러더군요. 좀 망설였지만 친구들도 다 한다고 색을 했지요. 그런데 염색한 머리를 보고 엄마가 막 비명을 지르시는 거예요. 큰일났다는 생각에 우선 이모 댁으로 바로 피했어요.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당장 원래대로 돌려 놓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고 하시잖아요. 엄마는 맘대로 놀라고 하시고는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하셨는지 몰라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 답변) ‘이제 중학생이 되면 나가서 노는 시간보다는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할 시간이 훨씬 더 많을 테니, 이번 여름 방학만은 신나게 놀아 봐야지!’ 주먹 불끈 쥐고 방학을 기다렸을 OO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동안 가지 못했던 곳도 가고 싶고, 갖가지 예쁜 것들도 사고 싶고……. 이 때까지 차곡차곡 모아 왔던 OO님의 소원을 풀기에 이번 방학은 정말 좋은 기회였을 거예요. 그런 중에 마주하게 된 엄마의 비명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움과 황당함이었겠지요. ‘분명히 신나게 놀라고 하시고는 고작 염색한 머리 하나 가지고 그렇게 난리를 치시다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도 많이 생겼을 거예요. OO님.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말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다시 말해 ‘신나게 논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OO님과 엄마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답니다. 이번 방학에 신나게 논다는 것을 두고 어떤어떤 것을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엄마와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약간씩은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마 엄마의 머릿속에 있는 ‘신나게 논다.’라는 의미에는 머리 염색이 들어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셨던 것이 아닐까요.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다 알고 있겠지.’라는 바람은 안타깝게도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은 어렵답니다. 이번과 같은 당황스러운 장면을 다시 만나지 않으려면, 평소에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거예요. 우리 OO님이 아직도 이모 댁에서 겁을 내며 숨어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고, 엄마가 나를 가만히 안 둘 것 같아 겁이 많이 나겠지만, 야단맞는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릴 일입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엄마 얼굴을 마주 보세요. OO님이 어떤 생각으로 염색을 했는지, 엄마한테 어떤 점이 섭섭하고 당황스러운지 충분히 이야기하세요. 엄마가 왜 그렇게 비명을 지르실 정도로 놀라신 것인지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어 보는 기회를 가진다면, 서로를 좀더 잘 이해하고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