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94년도 여름에 섬진강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었고 약혼녀 미희는 스물 셋이었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7월 중순경부터 집안에서 여름휴가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 때는 외갓집에 나보다 두 살 적은 영순이 이모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고, 나보다 네 살 적은 막내 이모-영자도 바로 위 언니보다 조금 늦게 결혼해서- 결혼 생활이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모든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깨가 쏟아지고 집안에 활력이 넘칠 때였다.
우리 집안은 외갓집 식구들이 부산에 거의 계셔서 외갓집 식구들하고 남부러울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를 외삼촌이 모시고 살아서 외갓집이 중심이고, 나의 어머님은 외삼촌의 누나로서 맏딸 역할을 잘하신다. 붙임성 좋으시고 리더-쉽도 강하시고.
외갓집이 지금부터 한 40년 전쯤에 전라도 강진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오셨다. 그래서 우리 외갓집에 가보면 나이 많으신 분들은 부산에 오래 사셨어도 전라도 말을 섞어서 쓰시고, 40밑으로는 순 부산-말을 쓰신다.
외갓집을 중심으로 집안이 부산에서 자리를 잡고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자녀들이 막내 영자 이모까지 시집을 가고부터는 놀러-휴가를 가도 언제부터인가 다같이 ‘집단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년 봄-여름-가을해서 1년에 세 번 정도는 정례 행사가 되어갔다.
[여름휴가- 계획]
94년도 여름에 휴가철이 다가 오는데 -
양산 배냇골 물가로 가자는 사람, 진하해수욕장 소나무 밑으로 가자는 사람, 태종대 자갈마당으로 가자는 사람 등........ 물가로 가기는 가는데 장소가 여러 곳으로 갈렸다.
그 때 영순 이모신랑- 이모부(홍서방)가 ‘하동 섬진강’으로 가자고 했다. 이 이모부는 나하고 동갑으로 하동군 악양면 분이시다.
“섬진강으로 가입시다. 뭔 배냇골이고 진하고 태종대로 간다고 해여? 섬진강으로 가입시다.”
“온 식구들 다 갈 것인데 섬진강은 너무 안 머나?”
“어차피 차로 갈 꺼 아인교? 아버님-어머님도 같이 가실 것인데 짠물보다는 민물이 좋고, 그라고 부산서 가까운 데는 사람들 바글바글해서 놀지도 못한다 아인교?”
“하긴 그 말은 맞기는 맞는데, 하동까지 갈라믄 2-3시간은 걸린다 아이가? 휴가철이라 차도 엄청 밀릴 것이고?”
“진하해수욕장 가는 것이나 배냇골 가는 것이나 시간 걸리기는 마찬가집니더. 7월말 8월초에는 오히려 부산에서 가까운 데가 차도 더 많이 맥히고 시간도 더 걸릴 수 있슴니더?”
“섬진강 가는 길은 안 막히나? 그 때는 온 사람들이 다 휴가 간다고 나올 것인데?”
“새벽에 출발하면 된다 아인교? 새벽 4시에나 출발하면 차 벨로 많이 안 막힐 겁니다. 그라고, 부산 근교는 그 시기에는 도착한다고 해도 사람들 우글우글해서 짜증만 난다니까요? 섬진강 얼마나 넓은 줄 압니까?
“휴가 끝나고 들어올 때도 밀릴 것인데?....... 쉴라고 휴가 갔다가- 오다가 차라도 밀려 뿔면 도로에서 노인들도 계시고 애들도 있고 ....... 이만 저만 고생 아니고 휴가 헛빵되불껀데?.......”
“아, 그라믄 올 때도 밤늦게 들어오면 될 꺼 아인교?”
“.......?” -
“.......?” -
“.......?” -
.......
출발하기 보름 전쯤에 우리 집에 다들 모여서 휴가 계획 세운다고 간단한 회식을 하는데....... 하동 출신 이모부-홍서방은 .......이번에는 딴 데 가지 말고 꼭 하동으로 가자고 했고, 다른 분들은 아무래도 멀어서 오고 갈 때 고생할 것이라고 미적미적하고 있었다.
“아, 하동으로 결정하자니께요? 내가 저번 주에 고향 친구한테 전화해보니까 은어를 두 빡께스나 잡아서 동네잔치를 했다고 하드라니께?”
갑자기 남자들 눈이 똥그래졌다.
“뭐시라?- 참말이가?”
“형님은 내가 싱겁게 거짓말이나 할 사람같이 보이는교? 슬기엄마(자기 부인-이모)한테 물어보이소. 영순아 내 말이 맞제?”
“오빠야 이번에는 이 사람 소원 한 번 들어 둬. 슬기 아빠가 맨 날 자기 고향 자랑하고 싶어하는데....... 이 사람이 몇 칠전에 친구한테 전화해보니까 친구가 은어가 막 깔렸따고 하데?.......” - 이모도 신랑을 거들었다.
‘이모부- 은어를 뭘로 잡어요?’ - 낚시 좋아하는 내가 “은어 나온다.”는 말에 귀가 쏠깃해지고 말았다.
“아 뭘로 잡기는? 낚시로도 잡꼬- 그물로도 잡꼬- 투망 던져서도 잡꼬- 대나무 후려갈기면 은어가 배떼지 까 디집어져서 붕 떠올라오기도 하고 그렇지.......” - 은어가 많다는 것을 최대한 강조했다.
‘참말로 은어를 잡을 수 있어요?’
“아, 내가 섬진강 가에서 20년을 넘께 살았따 아이가? 딴 사람들은 못 짭아도 나는 은어가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어떠케 잡는가 다 안단 말이다. 참 사람 말 못 믿네?”
'저는 양산이나 진하 쪽보다 섬진강이 나을 것 같네요. 태종대는 사람 많은 것 빤하고요.' - 은어 나온다는 소리에 나는 바로 섬진강 지지를 선언했다.
여자들이 문제였다. 애기들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여행길이 멀면 고생이 심할 것이란 표정들이었다.
“그라고 요새 섬진강 가면 재첩도 막 나올 땝니더?”
갑자기 여자들도 눈이 똥그래졌다....... 이모부가 ‘은어 이야기’에 이어서 갑자기 또 난데없이 재첩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부가 작심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 재부, 진짜로 재첩이 나와요? 전문적으로 캐는 사람들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생전 안 잡아 본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잡을 수 있어요?”
“하 - 참말이라니께요. 발바닥으로 문대기만 해도 쌔빈 것이 재첩입니더. 섬진강 재첩을 낙똥강 재첩에 비교할 수 있는교? 색깔도 노-오-래 가꼬 완전 자연산 그대롭니더. 재첩 색깔이 완전 까만색인 줄 알지예? 안 그렇습니더. 진짜 물좋은 데 사는 재첩은 꺼문 빛깔은 쪼매 뿐이고 전체적으로 노란 색깔이다니까예.”
“.......?”
“.......?”
“.......?”
.......
“그라고 부산 사람들, 재첩이 새끼 손까락 손톱만 한 줄로 알고 있는데예- 모르는 소립니더. 재첩이 자연산으로 옳게 큰 것은 왕밤만 하다니까요?”
“에이- 설마? 재부, 뻥을 쳐도 너무 심하게 까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그런 재첩이 어딨어요?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야지?”
“하아- 참말이라닝께요? 진짜로 섬진강에 가면 시장에서 파는 꼬막만한 재첩이 쌔비고 쌔빗따니께요? 영순아 니가 말 좀 해주라- 저번에 갔을 때 너도 안 봤나?”
“언니야, 진짜 그런 재첩이 있더라. 나는 물에 못 들어가고 슬기 아빠만 신발 벗어놓고 바지 올리고 들어가더니마는 금방 재첩을 한 주먹 잡아 나오데?”
“참말로?” - “진짜 그런 재첩이 있어?” - “진짜 재첩이 노-오-래?”
“어어- 나도 재첩이 홍합처럼 아주 새까맣타고 알고만 있었는데 거기서 잡은 재첩은 약간 까맣기도 하던데 전체적으로 황금빛이데? 섬진강에서 잡은 오리지날 재첩은 이런 시중에는 안 나오고- 호텔이나 고급 일식집에서 예약 해놓고는 잡은 즉시로 다 가져가쁜다 하네?”
갑자기, 듣고 계시던 어머니도-숙모도-큰이모도-둘째이모도-막내 이모도....... 입이 헤-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야- 참말로 재첩이 있끼는 있는 갑다야?”
“그러게?....... 영순이도 봤다고 한께 인자 쪼끔 믿음이 가네.”
“재부, 물 깊은 데만 재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같은 여자들도 잡을 수 있는데 있어요?.......”
“재첩이 아주 많은 데는 그것만 캐는 전문 꾼들이 하도 홀타부러가꼬 많이 없꼬, 그런데는 씨알도 잘고- 또 임자들이 있어 가꼬 재첩이 있어도 못 잡게 하는데도 있는데 ....... 내가 갈라고 하는 데는 우리 식구들 먹고도 남을 만큼은 충분히 잡을 수 있다니께요, 그라고 친구한테 전화해 본께 가물어 가꼬 물이 깊은 데가 없따고 하데예?”
“그러면 우리 같은 여자들도 잡을 수 있겠네?”
“요새 같이 한 여름에는 재첩이 물이 아주 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물가로 많이 나와 삽니더. 모래하고 짜잘한 자갈하고 섞여 있음시로 물이 천천히 흐르는데 씨알이 굵은 것들이 많아예. 그라고 부산서 먹는 재첩은 다 낙똥강에서 나온 것들이라 - 인자 낙동강 물이 똥물이 되야부러가꼬-물이 안 좋아져부러가꼬- 맛이 없어요. 재첩이 진짜 맛이 있을려면은 물도 깨끗하고 씨알이 굵어야 국물 맛이 시원하고 꼬소한 맛이 나요. 씨알이 잘으면 풋내 비슷하게 비린내가 나는데....... 섬진강에 가서 씨알 굵은 것으로 한 번 잡써들 보세요. 그 국물맛이 얼마나 시원한가? 아주 쌈빡하다니까요.”
옆에 사람들이 완전 넘어가 버렸다....... 남자들은 은어를 두 박게스나 잡았다는 소리에 넘어가버렸고....... 여자들은 보석 같은 재첩 이야기에 꼬빡 넘어가 버렸다.
결론은 7월 말에 2박 3일 일정으로 섬진강으로 휴가 장소가 정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여자들은 재첩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남자들은 은어 해먹는 방법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은어는 수박향이 나기 때문에 ‘회’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은어는 꼬쟁이에 끼워서 구워 먹는 ‘소금구이’가 최고다”는 사람도 있고.......
이모부-홍서방은 섬진강으로 결정이 나자 더 자신감 있게 고향 자랑을 많이 하셨다. 섬진강으로 결정이 난 다음부터는 집안 별로 역할을 분담했다. 집안마다 돈을 얼마씩 내고- 누구 집은 뭐를 준비하고- 누구 집은 뭐를 챙기고.......
나는 텐트를 책임지기로 했다. 당시에 나한테 3-4인용 텐트 하나하고- 15인용인가 하는 대형 텐트하고- 1인용 텐트까지 해서 텐트가 3개가 있었다. 이모부들은 자기들이 쓸 텐트를 하나씩 더 준비하기로 해서 텐트는 도합 5개를 준비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출발]
드디어 휴가 출발일 7월 31일이 되었다. 새벽 4시에 우리 집에서 최종적으로 모였는데, 모여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챙기고- 확인하고 한다고 5시 넘어서 출발했던 것 같다.
1톤 용달에 - 대형 아이스박스 하나, 작은 아이스박스 여러 개, 수박, 참외, 자두, 복숭아, 고기, 술, 음료수, 솥, 양념들, 쌀, 라면, 텐트, 깔판, 모기향, 모기약, 낚시가방, 회칼, 부엌칼, 도마....... 이불.......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사람들은 승합차 2대하고 용달에 나누어 타고 섬진강으로 출발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아버지-어머니, 외삼촌-외숙모-아들, 큰 이모, 둘째이모, 영순 이모-이모부(홍서방)-딸, 영자 이모-이모부(허서방)-아들, 나하고- 결혼을 약속한 동거 중인 애인하고.......
식구들끼리 떠나는 여행은 여행 자체도 즐거운 일이지만 준비 단계도 재미있고.......
좋은 일로 식구들이 다 모여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들 은어 이야기와 꼬막만한 재첩 이야기로 기대가 무지하게 컸다.
“만약에 은어를 못 잡으면 때레 죽에 분다”고 하기도 하고, “재첩이 없으면 부산 올라오지 말고 하동서 그냥 혼자서 눌러 살으라”고 하기도 하고, “거짓말 했으면 영순이 하고 다시 이혼하라”고 하기도 하고....... “은어나 재첩 중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봐 준다”고 하기도 하면서.......
고속도로 남강휴게소에서 간단하게 김밥으로 아침시장기를 떼우고.......
[섬진강이 보이다]
하동에 들어섰다. 섬진강이 나왔다. 건너편 푸른 산 밑으로 섬진강이 펼쳐져 있었다. 오- 아름다워라.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지방도로를 타자 곧이어 강이 보였다. 가뭄이라 물이 말라서 그 하얗게 고운 백사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강이 휘어지는 곳에는 언덕이나 산 밑으로 여지없이 여울을 만들면서 맑은 물이 고였다가 흘러나가고 있었고, 곧바로 뻗은 강바닥에는 가운데 부분으로 작은 내가 되어서 평평하게 -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모부-홍서방이 “하류에는 사람들도 많이 오고, 고기도 없고 재첩도 하도 파가버려서 많이 없으니 위로 올라가야 된다.”고 했다. 밭에는 더덕 농사들을 많이 짓고 있었다.
[드디어- 섬진강에 도착]
드디어 목적지에 닿았다. 아침 8시는 넘었고 9시는 안 되었던 것 같다. 건너편은 산이었고, 하동군-악양면 쪽은 높은 둑 위에 밭이 있었고- 옆으로 대나무 밭이 있었다.
놀랍게도 강바닥 폭-넓이가 150미터 정도나 되었다. 온통 곱고 하얗고 깨끗한 모래로 뒤덮여 있었고- 강물은 건너편 산 밑으로 폭이 10에서 30미터 정도 폭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이 즐길 수 있는 백사장 넓이가 120미터 정도는 된다는 말이었다. 강 하류 쪽으로나 강 상류 쪽으로도 모래밭이 끝 간 데까지 펼쳐져 있었다.
모든 식구들이 감탄을 하였다.
“홍서방 멋쨍이!”
“거봐요. 그렇게 오자고 할 때는 처음에 못 믿고 망설이더니.......
그런데, 가물다고 말은 듣기는 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물이 너무 없네예. 이라므는 재첩은 잡기는 쉬울 것인디- 은어는 잡기가 쪼메 힘들겠네예?”
“야- 홍서방, 너 벌써부터 자신 없이 발 빼기가?”
“우리는 은어 없어도 돼, 재첩만 잡을 수 있기만 하면 되요. 괜찮아요 재부”
“아니, 그게 아니고예- 재첩은 물이 많이 없어가꼬 더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을 것인데- 거기다가 물이 얕으니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 없잖아요? 그런데, 은어는 이렇게 물이 많이 빠져불면 밑으로 물 따라서 다 내려가 불거든요?.......”
"........?" -
".......?" -
".......?" -
.......
“그래도 걱정 마이소. 은어도 먹을 만큼은 잡아 드릴 테니까요.”
“참말이제?"
" 여까지 왔으니까 믿으시라니까요, 여까지 와서 인자사 안 믿으시면 우짤라꼬예?”
“말이 그렇다는 것이제, 없는 은어 못 잡으면 으짜겠노? 홍서방 말마따나 은어 잡기는 힘들 것 같네....... 홍서방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이렇게 좋은데 왔는데....... 그라고 쿨러에 얼음 넣어 가꼬 돼지고기양념하고 삽겹살 꾹꾹 눌러서 채워 왔따 아이가? 닭도 있고”
“허허-참말로, 은어도 잡아 드린다니까 그러시네들”
“은어든 재첩이든 나중에 잡기로 하고 텐트 칠 자리부터 먼저 잡고 짐부터 옮기자고”
“그럽시다”
[텐트]
“아야, 텐트 칠 때는 물가에서 너무 가까이 치지 마라. 지리산 밑이라 언제 물 넘칠지 모른다. 집 밖에 나올 때는 항시 조심해야 돼” - 외할아버지께서 집안의 기둥인 외삼촌한테 하신 말씀이었다.
“아부지, 해가 이렇게 쨍쨍한데 무슨 비가 다 오는교? 강바닥이나 안 마르면 다행이겠네요. 하하하-” - 막내이모 영자였다.
“아니 그래도 안 그래, 여름 날씨는 하루 걸러서 모른 것이다. 그라고 바로 위에 지리산이라 큰 산 밑에서는 날씨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그래, 아부지 말씀이 맞는 말씀이시다. 오늘 하루 밤만 있을 것도 아니고 내일 밤도 새야 하니까 넉넉하게 자리를 잡자. 물이라도 차서 이 많은 짐 또 옮길라고 하면 그것도 일이잖아?”
“그러면 너무 물가로도 말고- 물가에 놀러왔으니까 물가에서 너무 멀어도 안 되고- 중간쯤에다가 잡자?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본께로 이 나이에도 걱정들 되시는가 보다. 놀러 나오셔서까지 괜한 걱정하시면서 마음 불편하게 계시는 것도 안 좋으실 것 같으니까 중간쯤에다 텐트를 치자"
큰 사위인 아버지 말씀에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물가하고 대밭 둑하고 중간 위치에 텐트를 치기로 하고 그 쪽으로 짐들을 옮겼다.
식구들이 다 모여서 용달차에 가득한 짐들을 내려서 밭둑과 대밭 사이를 가로질러 텐트 칠 백사장으로 날랐다. 여자들은 냄비- 박게스- 작은 박스들을 나르고, 남자들은 대형 쿨러- 무거운 박스-큰 다라이- 텐트 같은 무거운 살림들을 옮겼다.
나도 처음에는 같이 짐들을 옮기다가 무거운 짐들이 거의 옮겨지자 먼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할머니께서 먼 길에 피곤하시다면서 빨리 눕고 싶다고 하셨고, 짐들을 정리하려면 들일 것은 들이고 내 놓은 것은 내 놓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메인텐트’인 15인용 텐트를 먼저 쳐야했다. 텐트가 워낙 커서 혼자서 치지 못하고 젊은 두 이모부 홍서방하고 허서방하고 세 명이서 힘을 합해서 군대 있을 때 실력으로 텐트를 같이 쳤다. 위에 보조 덮게까지 쳐서 햇볕 가리게까지 쳐 놓으니.......
15인용 텐트를 쳤더니 아주 장관이었다. 군대 갔다 온 지 얼마 안 된- 예비군 세 명이 실력발휘를 했더니- 꼭 집을 지어놓은 것 같았다. 식구들이 호텔이라고 입을 쩍 벌렸다. 외숙모- 이모들-여자들 쓰실 텐트를 따로 쳐 드리고.......
그 다음에는 홍서방하고-허서방하고- 나하고....... 각자 쓸 전용 텐트를 멀찌감치 쳤다.
홍서방-이모부는 영순 이모하고 애기-슬기-하고 쓸 텐트를 쳤고.......
허서방-이모부는 영자 이모하고 애기-준이-하고 쓸 텐트를 쳤고.......
나는 약혼녀 미희하고만 - 밤에 - 쓸 텐트를 쳤다.
(홍서방-이모부는 나하고 동갑이고, 허서방-이모부는 나보다 두 살인가 나이가 많다.)
대형 텐트는 공용이었고, 3-4인용 텐트 한 동은 ‘아줌마’들 공용이었다. 특히 대형텐트는 가족 오락장이었다.
텐트가 다 쳐지자 짐들을 풀었다. 밖으로 내 놓을 짐과 안에다 들여놓을 짐들을 구분해서 - 밖에 내놓은 물건들은 햇빛 안 받게 텐트 뒤편에다가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개인적으로도 짐들을 챙겨서 풀었다.
짐 푸는 것이 다 끝나자 집안의 여자들이 물가로 몰려가서 쌀을 씻고 국거리를 다듬어서 밥 준비를 하였다. 아침을 안 먹고 왔으므로 모두들 시장하다 해서 밥 먼저 빨리 먹자고 했던 것이었다.
할아버지-할머니는 텐트가 쳐지자 큰 텐트 한 쪽에 자리를 깔고 바로 누우셨고.......
아버지-외삼촌 -둘째이모-허서방 네 분은 모포를 깔고서 바로 고스톱 판을 벌리셨고.......
“홍서방도 고스톱 치게 빨리 와”하는 것을 홍서방은 은어 찾아보고 오겠다면서 물가로 바로 갔다.
쌀을 씻어서 가스버너 위에 밥을 얹히고- 국거리로 국을 끊이는데 .......여자들이 다들 밥솥 주위로 둘러앉으면서 모여들었다. 배가 고파서 밥 냄새- 국 냄새에 끌렸던 것이었다. 그 거지같은 꼴이란....... 여자들이 “우리가 꼭 거지 떼거리 같다”면서 웃었다.
[섬진강- 꼬막만한 재첩]
그런데 어머님이 쌀 씻었던 저 쪽 물가에서 나오시고 계셨다.......?
쌀 씻으러 물가에 같이 가셨다가 ‘서열 빽’으로 동서하고 동생들한테 ‘아침을 챙기라’고 미루시고, 어머님은 물가에 남으셔서 재첩이 있나 없나 확인을 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두 손에 뭔가를 가득 쥐고 나오셨다. 대번에 재첩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이- 이것들 좀 봐봐- ”
밥솥 가로 삥 둘러 있던 여자들이 어머니한테로 막 달려들 갔다. 나도 같이 뛰었다. 어머님이 양 쪽 손을 모으셔서 들고 계신 것들을 한 데 모아서 손을 펼쳐 보이셨다.
“우와- 형님, 진짜 꼬막만 하네요”
“오- 이 색깔 고운 것 좀 봐- 영락없는 금 색깔이네. 초록색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고스톱 치던 사람들도 텐트에서 막 달려 나왔다.
“우와, 재첩이 진짜 멋찌구만?” - “진짜 꼬막만 하네, 왕밤만 하지는 않고....... 하하하-”
“떼깔 좋은 것 봐봐- 아조 토실토실 하구만.......” - “쪼끔만 더 크면 바지락만 안 하겠다고 여-?”
“언니야, 만트나? 막 나오드나?”
“몇 군데 안 팠는데 손으로 살살 모래를 밀어재치면서 더듬으니까 잽히더라고, 홍서방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만”
“언니 너는 우리 신랑 여태까지 안 믿었제? 인자 믿껐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형님 더 잡으러 갑시다.”
“아따, 그만 호들갑들 떨고 밥 먹고 가자- 여기 우리 말고 아무도 없잖아- 아버지하고 어머님 시장하실 테니까 밥 먹고 해도 안 늦겄네”
“.......? 그래요, 형님....... 밥 챙겨서 먹고 식구들 다 재첩 캐러 갑시다.”
여자들은 다시 솥 가로 모였다.
[은어 탐색]
나는 물가로 갔다. 홍서방 이모부를 찾아보니 이모부는 벌써 저 위 쪽에서 물을 따라 올라가면서 뒤지고 있었다. 나는 반대편- 밑으로 내려가면서 살폈다.
물이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다. 샌달을 신은채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 깊이가 발목까지 오는 데도 있었고 깊은 곳은 무릎 정도까지 밖에 안 되었다. 강물이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물줄기가 두 갈래 세 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모아지기도 하고 또 흩어지기도 하면서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물이 바닥난 상태라서 많이 차갑지는 않았다. 아침에 시원할 정도이니 해가 높아지면 물이 약간 더 따뜻해 질 것이고, 흘러가는 물이니 물이 데워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강이 아니고 평평한 넓은 내 정도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밑으로 쭉 내려갔다. 그랬더니 물길이 완전히 하나로 모아져서 좁아지면서 수량도 많아졌고 물살도 빨라졌다. 강바닥 밑으로도 물이 흘러가고 있다가 경사지가 나오니 물이 땅위로 솟아올라온 것이었다. 내려갈수록 경사가 심해졌다.
100미터 정도를 물속을 걸으면서 따라 내려가니....... 오- 기쁨!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폭이 한 10미터 정도이고 길이가 한 30미터 정도 되는 깨끗한 웅덩이였다. 물색을 보니 퍼렇게 깊이가 사람 키가 넘어 보일 것 같았다. 바닥은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었는데 골재 채취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영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고기들도 제법 보였다. 은어인지 확인은 할 수 없었지만 제법 많은 고기들이 있었다. 됐다 싶었다.
밥이 다 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시 강물 속을 걸어서 강바닥을 유심히 살피면서 위로 따라 올라왔다. 강바닥 돌들에 이끼는 묻어 있는데 .......고기가 핥아먹은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은어가 없는 것일까? 은어가 있으면 돌바닥에 이끼 핥아먹은 자국이 남아 있을 텐데?....... 그럼 아까 그 웅덩이에 고기들은 은어가 아니었단 말인가?........'
계속해서 물을 텀벙거리면서 올라오는데 “승환아 빨리 온나. 밥 다 됐다.”하고 불렀다. 배가 고파서 ‘밥 차려놨다’는 소리에 곧장 텐트 쪽으로 달려갔다. 진수성찬이었다. 안 그래도 밖에 나와서 해 먹는 밥은 맛있는 법인데 하늘은 맑고 공기 상큼하고 맑은 물 흘러가는 소리 나고 ....... 낙원이 따로 없었다. 식구들이 누구 한 분 없이 다 같이 밥을 몇 공기씩 먹어 치우셨다.
“저 위로 쭉 갔다 와 봤는데 은어는 안 보이네예. 물이 너무 말라 부러가꼬 고기들이 하류 물 많은 곳으로 다 옮겨가버린 것 같네예. 그래도 걱정 마이소, 딴 데 다 없어도 나 혼자만 은어 몰려 있는 자리를 아니까네”
“형님, 빨리 밥 먹고 우리는 재첩 캐러 가입시다. 은어보다 재첩이 더 알찌겠네요. 재첩이 진짜로 저렇게 큰 재첩이 다 있네요.”
[꼬막만한 황금재첩 캐기]
아침 식사들을 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만 텐트에 남으시고.......
갓난아기인 영순이 이모 딸하고 영자 이모 아들은 할머니가 보시게 하고 모든 식구들이 양판- 다라이- 플라스틱 통들을 하나씩 잡고 우하니 물가로 달려갔다.
정강이 정도의 물 깊이에 모래하고 자갈들이 섞여 있는 ‘모래밭’에 재첩이 많았다. 손가락으로 갈퀴를 만들어서 모래를 끄집어 당기면 손가락 촉감에 걸려들기도 하고....... 하나라도 더 캐볼 욕심에 손-갈퀴를 최대한 멀리 뻗어서 천천히 몸쪽으로 모래를 끄집어 당기면서 헤쳐 놓으면....... 부유물이 일어났다가도 2-3초 후에는 흐르는 물에 물속-모래먼지가 밑으로 떠내려 가 버리고....... 꼬실꼬실한 모래에 정말로 꼬막만한 크기의 깡깡하게 생긴 초록색을 띤 꺼무노르스름한 재첩이 또실또실하게 나타났다....... 얼마나 곱던지 꼭 보석을 캐는 기분이었다.
식구들 12명이 거리를 두고 헤집어도 워낙 물이 맑아서 꾸정물이 일지 않았다. 단지 실만 남은 낙엽찌꺼기 조금 있는 것들이 일어났다가 금새 밑으로 흘러가고 마는 정도였다. 아버지- 외삼촌 - 이모부 두 분- 나- 어머니- 외숙모- 큰 이모- 둘째이모- 셋째이모- 막내이모-약혼녀 미희까지 12명이 물 속 바닥을 찬찬히 살피면서 재첩이 있을만한 곳을 천천히 도트면서 위로-위로 올라갔다.
“형님, 저 이만큼 잡았어요? 형님은 얼마나 많이 잡으셨어요?”
“나도 자네만큼 잡았네.”
“어디 한 번 봅시다. 우와- 많이 잡으셨네요. 무슨 재첩이 이렇게 굵어요? 색깔이 너무너무 이뻐요 형님”
“그러게 말이시, 나도 이런 재첩은 처음 보네. 우리가 여기서 다 묵고 가불면 우리가 말해도 사람들이 아무도 안 믿겄째?”
“당연히 안 믿겠지요. 우리도 처음에는 안 믿었으니까”
“언니야, 그런데 이것이 진짜 재첩이 맞기는 맞나? 혹시 재첩이 아니고 다른 종류의 조개 아니가?”
“에헤, 처제는 내가 섬진강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재첩을 모르겠는교? 여기 이 부분이 재첩이 제일 굵어요. 저 밑으로 가면 물 깊은데 모래밭 속에 재첩이 많기는 한데 여기만큼 안 굵어요. 재첩 껍질 뚜꺼분 것 좀 보소”
“아야, 말들 많이 하지 말고 빨리 잡기나 해야. 국 끊여 먹게”
“처형이랑 처제는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작은 것은 잡지 말고 살려주이소. 작은 것은 맛 없어요. 재첩은 굵을수록 꼬신 맛이 많이 나거든요. 큰 것만 골라서 삶아놓으면 국물이 끝내주게 시원한디- 작은 것 들어가불면 맛이 덜나부러요”
“호오- 그게 그래요?”
“작은 것은 비렁내 나서 꼬신 맛이 벨로 안 나고 오히려 맛만 베리게 맹글어부요”
“형님, 나는 작은 것도 다 주서 담아부렀는디?” - “언니야 나도?”
“작은 것 들어가면 맛 없다고 안 그라냐? 어서 살려줘라?”
“그래도 아깝네?.......”
두 시간 정도를 물 속에서 식구들이 재첩을 잡아서 다라이에 부어넣고-부어넣고 해서 채우니 큰 다라이에 반 정도가 찼다. 사람들마다 재미를 만끽하고 다 부자가 된 것 같아했다. 재첩을 모래 속에서 파내서 다라이에 담가 놓으니 노란-금색과 함께 초록색-빛이 많이 살아났다.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다 보니 텐트에서 점점 멀어졌다.
“인자 여기는 처음에 그 자리보다 많이 없구만, 잡을만큼 잡았는 것 같으니 더 잡을 사람은 잡으라고 하고 고스톱 패는 고스톱 치러 가세들.”
“그랍시다. 이만하면 엄청 잡았네요.”
[섬진강- 흘림낚시]
남자 어른들은 다시 텐트로 들어들 가시고....... 나는 낚시가방을 꺼내서 4칸 대-7.2미터짜리 장대 낚싯대를 챙겼다. 그리고 털바늘 채비를 했다.
그 때까지 은어낚시는 한 번도 안 해봐서 전날 낚시방에 가서 물어봤더니 “요즘 같은 시기에는 털바늘 채비가 가장 무난할 것”이라고 했다. 낚시방에서 챙겨준 은어 털바늘낚시는 열기낚시처럼 2미터 정도의 원줄의 가지줄에 망상어 바늘 작은 것 정도의 바늘이 새털로 위장을 한 가운데 열다섯 개 정도가 달려 있고 맨 아래에 작은 추가 하나 달려 있었다.
이 새털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살에 날리면서 먹이가 헤엄치는 모양을 내는 것이었다. 고기가 물속에서 나부끼는 새털을 먹이로 착각하고서 물면 바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예리한 낚시에 걸리게 되어 있었다.
아침에 봐 둔 웅덩이 못 미쳐서 물살 센 곳으로 갔다. 물이 반 정도는 웅덩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고- 반 정도는 바로 밑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살이었다.
물 살 가운데 서서 하류 쪽으로 몸을 향하고 긴장한 상태에서 기대를 크게 하고서 낚싯대를 조심스럽게 뿌렸다. 낚싯대만 잡고 있어도 물살이 세서 낚싯줄이 적당하게 팽팽해졌다. 낚싯대를 눕혀서 옆으로 슬슬 끌어당겨보았다. 고기를 유인하기 위하여 미끼가 도망가는 모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입질이 바로 왔다.
“토독- 토독- 토도독- 톡-톡”
고기가 있기는 있다. 고기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뽈라구- 끌낚시 귀신인 나한테 민물에서의 고기 입질도 바로 느껴졌다. 계류 고기들 입질이 시원-시원했다....... 처음이라 바로 채지 않고 낚싯대를 손으로 바치면서 더 기다려봤다.
“토독- 토독- 토도독 ....... 후욱- 후욱 - ”
고기가 물었다. 두 마리가 물었다- 또 물었다.
“토도독- 후욱-후욱- 후욱- ”
세 마리가 물었다. 낚시를 많이 해 봐서 몇 마리가 문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빼자’- 낚싯대를 천천히 당기면서 물가로 옮겨갔다....... 물살 중심에서 고기를 처리하기에는 물살이 너무 셌다. 무릎 정도의 물가까지 나왔다....... 낚싯대를 천천히 세웠다....... 낚싯줄은 아직까지 물살 가운데 있어서 제법 쏠려가는 느낌이 든다....... 고기는 계속해서 좌우로 낚싯줄을 흔들어 댄다.
‘천-천히- 천-천히 -처-언-처니- 처 -언처-니.......’
낚싯줄을 좀 길게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고기가 물고 늘어지니 처리하기가 깔끔하지 않다. 물가로 더 나갔다....... 낚시 밑줄이 물살 중앙을 벗어났다....... 그런데?....... 고기가 힘이 없다. 고기가 세 마리나 붙었는 것 같은데 ....... 세 마리 치고는 낚싯대에 느껴지는 묵직함이 딸린다. 바다 낚싯대라 낚싯대 허리힘이 좋다고 하지만.......
쭈-욱 끌어당기니 .......쭈-욱 딸려왔다....... 물 속에서 고기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허연 것들 세 마리가 요리조리 마구 움직인다. 쭈-욱 ....... 아-이런, 역시나....... 은어가 아니었다. 피리새끼였다.
‘아- 이런....... 쯧쯧’
고기를 수면에서 조심히 빼서 다시 물 속에 놓아줬다. 피리는 피리인데 참피리도 아니고 개피리였다. 중태기는 아니었고 중태기하고 피리하고 섞어놓은 모양이었다. 어른 손가락 하나 반 정도 크기로 ....... 은어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은어가 아니어서 실망스러웠다.
낚시채비를 다시 손 봤다. 고기가 물고 늘어지니 줄이 길어서 마무리가 수월하지 않았던 것이다. 털바늘 채비를 원래 2미터 정도 길이에서 1.5미터 정도로 줄이고 낚시 바늘도 몇 개를 솎아냈다. 고기가 물 때 낚시 바늘이 엉키면 안 되었다.
다시 처음에 물살 가운데로 갔다. 조심스럽게 다시 낚시를 흘렸다. 역시 바로 입질이 온다.
“토독-토독-토도독- 후욱-후욱- 후욱- 토독.......”
역시 아까 번 입질하고 같다. 역시나 - 끌어내보니 똑같은 고기다. 다시 조심히 수면에서 고기를 빼서 물 속에서 놔 줬다....... 다시 낚시를 흘렸다....... 역시나 마찬가지다- 또 마찬가지다.
‘아, 고기가 저 웅덩이 속에 꼭 있을 것 같은데....... 못 생긴 피리밖에 안 문단 말이야?’
몇 발자국 더 밑으로 내려가서 낚시를 다시 물살에 태웠다....... 이번에는 털바늘 채비가 웅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낚싯대를 눕혔다....... ‘눕혔다-세웠다’를 반복하면서 흘림을 조절했다....... 털바늘 채비가 웅덩이와 물살의 가장자리에서 떴다-가라앉았다- 왔따리-갔따리하게 컨트롤을 했다....... 역시나 입질이 왔다........ 입질이 다르다.
“투둑-투둑-투두두둑- 투두둑- 토독- 토도독- 토독.......”
낚시대를 손목 힘으로 순간적으로 챘다.
“후욱- 쑤욱- 꾹-꾹- 쑤욱.......”
여태까지 입질하고는 무게감이 틀리다....... 첨벙첨벙 뒤로 물러났다....... 고기를 처리하려면 다시 물 흐름이 조용한 물가로 나가야 한다. 다리는 첨벙첨벙 거리면서도 손동작은 조심하여 낚싯대의 흔들림을 최대한 작게 했다. 물가에 나와서 낚싯대를 다시 천천히 추켜세웠다....... 고기 힘쓰는 것이 역시 틀리다....... 조심조심 끌어당겼다.
고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헤엄치는 것이 틀리고 색깔도 틀리다....... 푸루둥뎅한 것이 은어가 맞았다....... 드디어 은어를 잡은 것이었다....... 은어 두 마리하고- 놓아줬던 고기하고 똑같은 피리새끼 세 마리였다.......
그런데, 에게게.......? 은어는 은어가 맞는데....... 은어가 중치급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채 10센티도 안 되는 새끼였던 것이다. 최소한 손바닥 길이는 되어야 살이 붙고 먹을 만한데 10센티도 안 되는 것이 빼빼했다.
앳되어 보이고 눈망울이 너무 이쁜 것이 울려고 했다....... 그냥 살려줬다....... 작은 것들이 있으면 큰 놈들도 있을 것이라 판단이 됐기 때문이다.
또 낚시를 흘렸다....... 역시나 새끼였다....... 또 살려줬다....... 시간이 갈수록 은어 입질이 뜸해졌다. 피리만 연달아서 올라왔다.
‘아 있을 만도 한데....... 안 무네?’
낚시를 계속해서 흘려도 갈수록 피리 일색으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은어는 입질조차 없어졌고- 계속해서 피리만 올라온다. 나중에는 피리마저 입질이 뜸해지더니....... 그 마저도 잠잠해져 버렸다....... 고기들이 낚시에 적응을 한 것이었다.
‘은어는 홍 서방 말대로 아래 물 많은 데로 다 빠져나가고 없는가 보다.’
상황이 상황대로 인식이 되면 마음을 접을 줄도 알아야 된다. 더 이상 은어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피리낚시라도 하지 뭐? 언제 또 이런 경치 좋은 데 와서 한가하게 물속에서 낚시를 해 봐? 신선이 따로 있나....... 이런 상태 자체가 바로 신선이지.’
[강에는 은어가 없다고 했다]
한참을 혼자서 낚시를 하는데, 근처에 사는 복장으로 나이 드신 아저씨 한 분이 낚싯대를 들쳐 메고 지나가셨다.
“총각, 은어 좀 잡았는교?”
‘은어는 안 나오네요? 피리 새끼만 입질합니다? 처음에는 새끼 몇 마리 보이더니만 이후로는 뜸하네요?’
대답을 해드리면서도 여쭤보는 식으로 말씀을 드렸다. 현지인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고....... 현지인의 말 한마디는 바로 살아있는 정보라는 것을 낚시를 많이 다녀봐서 아고 있는 터였다.
“여기는 고기 다 빠져 나가고 없어요. 비가 와서 물이 차야 고기가 다시 올라오지, 물 빠지면서 씨알 좋은 놈들은 하류로 다 빠져나가고 없어요. 보름 전만해도 은어가 흔했는데.......거기 웅덩이 속에도 처음에는 바글바글 했었는데 사람들이 그물로 하도 건져내버렸으니- 손까락만 한 것 몇 마리밖에 안 남았을 꺼요.......너무 작은 것은 맛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피리보다도 못해요....... 계속해서 비가 안 오니 위에서부터 물들을 다 논으로 빼 버리니 고기가 있을 리 없지- ”
‘아, 그래서 그렇군요.’-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막 속이 쓰렸다.
‘그런데 어르신은 어디로 낚시하러 가세요?’
“저 밑으로요- ”
‘저 밑으로요? 저 밑으로 가면 은어 좀 나오는가요? 여기서 멀어요?’
“고기 없어요. 엇그저께도 갔다 왔는데 몇 마리밖에 못 잡았어. 시간이 남아도니까 심심해서 가는 것이지- ”
‘아, 그러세요? 다녀오세요.’
“그란디 텐트를 너무 물가에 가까이 쳐 놓은 것 같네?....... 오늘 저녁에 비 온다고 하는디.......”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그냥 가셨다. 저 멀리 텐트하고 물가를 확인해 봤다.
‘80미터는 될 것 같은데 무슨 물가야?’.......혼자서 중얼거렸다.
점심 차려놨다고 약혼녀-미희가 오라고 불렀다. 점심도 역시 꿀맛이었다. 재첩국을 끊여놨는데 국물이 그야말로 끝내줬다. 맑간 국물에 파르스름한 국물이 베어 나와 있었는데, 비린내도 안 나고, 부산에서 먹는 재첩국마냥 뻘냄새도 안 나고 정말로 고소한 맛이 났다. 해감이 덜 되어서 모래가 한두 개 씹히기도 했는데 국물 맛이 기가 막히게 시원했다. 뜨거운 물에 끊이니 조개껍데기의 초록빛은 국물로 다 빠져 나왔는가 진한 황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영순이 이모하고 이모부는 양념고기하고 삼겹살을 싸가지고 시댁에 다녀왔다고 했다. 차타고 가면 이모부 고향집이 몇 분 안 되는 거리에 있다고 했다.
“어머님보고 오셔서 같이 놀자고 했더니만 안 오신다고 하네예, 촌사람들이라 어불리는 것이 안 편하신가 배요. 그라고 무슨 고기를 그렇게 많이 보내셨냐고 미안해서 죽을라 카데예- ”
“미안해하시기는- 혼자 계시면서 안 나오신다 하니까 우리가 더 미안쿠마는....... 잘했네, 당신 안 편하면 편하신 데로 해 드리는 것이 오히려 잘 한 일일 수도 있다네. 일단 고향에 와서 먼저 인사드리러 갔다 왔으니까 됐네, 자- 인자 고스톱 한 판 맘 놓고 때레불자고?”
“어머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데요....... 그라고 뉴스에 오늘 저녁에 이 짝에 비 온다는 말 있던데요?.......”
“.......? 햇볕이 이렇게 나는데?.......”
“자리 옮겨야 안 되겠능교?”
“물가하고 얼쭈 80미터도 더 될 것 같은데 옮길 필요까지 있겠나?....... 처음부터 물가하고 충분히 떨어져서 텐트 자리를 잡았으니까- 여기 물차면 저 끝에라도 안 차겠나? 뭐 큰 비 아니면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이대로 있다가 정 비가 많이 오면 그 때는 텐트 걷어서 자네 집으로 가면 돼지 뭐?”
“그럴까요? 그럼 그렇게 하입시더”
저녁에 비가 온다는 뉴스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있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식구들 말고도 멀리 떨어져서 아래쪽으로 텐트들이 몇 개 새로 보였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물가에 있었는데 옮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모부, 낚시를 해보니까 은어가 없네요. 새끼 몇 마리 잡기는 잡았는데 씨알이 너무 잘고 피리새끼밖에 안 올라오네요. 동네 나이 드신 분이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은어가 흔했는데- 저 밑에 웅덩이에 은어가 우글우글했다는데 그물로 다 잡아내버리고 - 가물면서 고기가 다 빠져 나가버렸을 것이라고 하네요.......’
“밥 먹고 나하고 가자, 거기 가면 은어가 꼭 있다.”
‘진짜로?.......’
[은어는 풀밭에 숨어 있었다.]
밥을 먹고 이모부하고 이모부가 가자는 곳으로 따라갔다. 처음에 왔던 둑을 지나 마을 옆 논으로 들어가는 농수로 앞에서 멈췄다. 폭이 2미터쯤 되고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위쪽에서 물이 들어와서 아래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물풀들이 많이 우거져 있었는데, 이모부가 조심스럽게 물풀을 떠들 써 보더니 -
“있다. 은어가 있다....... 많다.”
‘아니? 이런데 은어가 있다는 말입니까? 은어는 일급수에만 산다는데.......?’
“아, 이 사람아 이 물도 깨끗한 물이다. 봐봐? 강에서 수로 타고 바로 들어오는 물이야, 풀이 우거져서 그렇지 물은 깨끗해”
수로를 따라 시선을 쭉 따라가 보니 강에서 바로 들어오는 물이 맞았다. 물풀 밑에 물을 살펴봤더니 생각 외로 맑았다. 물풀 밑에 물은 더러운 물이라고 고정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이 상상외로 깨끗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물풀이 우거져 있는데- 잎들을 한 쪽으로 재치니- 밑에는 풀줄기들만 있어서 공간이 많았다....... 그 속에서 수 십 마리의 은어가 우글우글-바글바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오-오- 놀라웠다.
옷을 입은 채로 이모부가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서 먼저 잡아 볼게” -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서 손으로 더듬이질을 하더니 금새 은어를 잡아냈다. 뼘치급이었다. 한 마리를 잡더니 냄새를 맡아봤다.
“수박 향이 안 나네?”
잡은 은어를 밖에다 던져놓더니 몇 마리를 금새 또 잡아냈다. 또 냄새를 맡아봤다.
“이것도 수박향이 안 나네. 여기 고기들은 수박향이 안 난단 말이야, 냄새한 번 맡아봐라. 수박향이 나는가?”
‘비린내 밖에 없는데........ 수박 향은 전혀 없고?’
“날씨가 가물면 고기들이 물 따라 들어와서 이런 데 숨거든, 여기는 동네 사람들도 잘 몰라. 언젠가 나도 우연히 알았어, 은어가 있더라고. 그런데 은어가 맑은 강물에서 헤엄치고 다녀야 수박향이 나는데 ....... 이런 또랑 풀숲에서 살면 향이 없어져 버린단 말이야. 은어가 수박향 안 나면 회로 못 먹어, 맛 없어서.”
‘.......?’
“어떡할래? 잡아갈까?”
‘수박향 안 나서 맛없으면....... 피리하고 똑 같은 것이잖아요?’
“은어는 원래 맑은 물 콸-콸 흘러가는 데서 강바닥 돌에 이끼 낀 것 핥아 먹고 사는데.......가물어 가꼬 풀 뜯어 먹고 살면는 본래 향기가 없어져 버리는 가봐?”
‘그게 그런가요?.......’
“암만, 막 흘러가는 물에 헤엄치고 살다가 이렇게 고인 물에 숨어 있으면 맛이 있겠나? 원래 지 살던 데하고 틀리는데?”
‘그라믄....... 맛도 없는 고기 괜히 죽이지 말고....... 갑시다.’
“은어 잡으러 왔다가 은어 안 잡고 가도 괘않겠나?”
‘괜찮아요. 이렇게 많은 은어는 처음 보네요.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황홀하네요.’
“다음에 친구한테 전화해 가꼬 은어 있다고 하면- 그 때는 너하고 나하고 둘이만 같이 오자. 그 때는 오지게 잡아줄 테니까. 부산서 여까지 밟으면 2시간도 안 걸려서 오잖아?”
‘그랍시다. 그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와야겠네요.’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회를 잘 먹지 않았다. 은어가 수박 향 난다고 해서 신기한 고기인 줄 알았는데 수박향이 없는 은어는 피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메리트가 갑자기 싹 가시고 말았다. 더군다나 풀숲을 헤치고 다니면서 은어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시에 있다가 갑자기 시골에 나와서 풀독이라도 오르면 간지러울 것 같기도 하고.......먹지도 못하고 사람 놀래키만할 물뱀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모부가 풀숲을 헤치고 다녔더니 강물과는 다르게 꾸정물이 일어나서 얼른 가라앉지 않았는데....... 그런 고기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지금이야 없어서 못 먹지요)
월간낚시나 낙시춘추에서 봤던 푸루뎅뎅한 선명한 색깔이 아니고 약간 희부덕덕한 색감이 있었다. 회 먹는 것을 막 배우던 시기라 민물 회는 1급수가 아니면....... 먹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
‘잡은 것으로 하고 그냥 갑시다. 회로 못 먹고 구워먹을 것 같으면 돼지고기도 많잖아요?
잡았다고 하고 오늘 진짜 은어를 봤으니까 아껴났다가 다음에 올 때 그 때 잡읍시다.’
텐트로 갔다. 은어가 없더냐고 물어들 보셔서- “고기는 있는데, 몇 마리 잡아서 냄새를 맡아보니 수박향이 안 나서 회로 먹을 고기가 못 되데요.”하고 대답했다.
“고기 봤으면 됐고 구워먹을 고기는 먹고도 남을 만큼 있으니까 굳이 은어 잡을라고 애쓸 필요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공이나 신나게 한 번 차고 가자.”
[백사장 축구]
외삼촌하고 나하고 편을 먹고, 두 이모부가 편이 되어서 돌로 꼴대를 만들어 놓고- 가지고 온 배구공으로 전후반 30분씩 맨발로 축구를 하였다. 네 사람이 백사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난리가 아니었다.
가다가 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으니- 슬라이딩태클도 막 들어오고....... 금방 일어나서 다시 덤벼들고....... 못 쫓아갈 것 같으면 발 걷어 불고 옷 잡아당겨 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옆에서 보시는 식구들이 텐트 안 그늘에서 뒹구시면서 박장대소를 하셨다....... 모래밭에서 달리고 차고 하는 것보다....... 배꼽이 아파서 숨을 못 쉴 때가 더 많았다.
휴가철 백사장에서 나이 드신 외삼촌하고 젊은 두 동서하고 왕 조카하고- 집안 식구들이 관중이 되어서 박장대소를 하시면서 나뒹기는 가운데- 젊음을 만끽한 것이었다. 모래밭에서
평소에 안 하던 축구를 하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전 후반 30분씩 한 시간 동안 반바지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고 나니 다들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축구가 끝나고 외삼촌하고 두 이모부가 큰 텐트 안에 들어가셔서 큰 대자로 누워버리셨다......... 그런데, 이내 축구를 안 하고 보고만 계시던 아버지하고 둘째 이모가 고스톱 판을 벌리자고 해서.......금방 또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아줌마들은 다시 재첩을 잡으러들 가셨다.
[아기들 어드벤쳐]
축구한 사람들이 수박을 쪼개 드시고는 본격적인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나는 고스톱에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재첩 잡는 물가로 갔다. 아줌마들이 또 재첩 잡는 재미에 빠져서 재첩을 캐면서 상류 방향으로 저만큼 더듬어 올라가고 있었다. 막내 이모 혼자서- 서열에서 밀려서 ....... 물가에서 깔판을 깔아 놓고 애기 둘을 보고 있었다.
“조카, 애기 좀 봐 줄래? 나만 이게 뭐꼬? 나도 재첩 잡고 싶단 말이야?”
‘할머니한테 맡겨 놓고 오지 왜 데리고 왔어?’
“맡길라고 했는데 낮잠 주무신다고 하시잖아? 우리 엄마는 뭔 일 있어도 이 시간에는 주무셔야 된다.......”
‘알았어, 내가 애기들 봐 줄 테니까 이모도 같이 가서 재첩 잡어’
‘고마워요 왕 조카님- 애들 물에 못 들어가게 잘 봐야 된다?’
‘알았으니까, 걱정 말고 빨리 가서 재첩이나 많이 캐와’
막내 이모가 물을 첨벙거리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재첩 캐는 아줌마들을 쫓아갔다.
혼자서 애들 둘을 보게 되었다. 준이는 아직 걸음마를 못하고- 슬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웠다. 미희도 눈치 없이 아줌마들 틈에 찡겨서 벌써 저만치 위에 올라가고 있었다. 저 멀리 텐트에서는 고스톱 친다고들 정신들이 없고....... 혼자서 심심했다.
애들 둘이 멀뚱멀뚱하니 나를 쳐다보는데 애들도 더운가 보다. 한 놈씩 들어서 무릎까지 차는 곳으로 데려가서 물 속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담가 줬다. 애들도 시원한 것이 좋은 가 보다. 그것도 더 이상 귀찮아서 두 손으로 물을 모듬아서 머리에 부어줬다. 애들이 좋은 가 보다. 지들끼리 웃기도 하고 벌써 나한테 아부의 표정을 짓는다. 나도 한번씩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고스톱 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스톱 친다고 정신들이 그 쪽에 쏠려 있고 재첩 잡으러 간 사람들은 한 참을 올라가서 가물가물하다.
‘뭣 좀 재밌는 것이 없을까?’
애들도 심심한 모양이다.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아이스박스다. 물이 흘러가는 곳 중에서 움푹 패인 곳을 골라서 아이스박스에 물을 담고 내용물들을 시원하게 담가놓고 있었다. 뚜껑을 열어봤더니 맥주-소주-음료수 캔들로 꽉 차 있다.
애들을 태워주고 싶은데 내용물 꺼내기가 번거로웠다....... 뚜껑을 들어서 여기저기 살펴봤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뚜껑이 비니루로 코팅이 잘 되어 있어서 보기보단 짱짱해 보였다.
애기 하나를 태워봤다....... 떴다. 둘을 태워봤다....... 그래도 떴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걸음마 단계 애기 둘을 태우고도 부력이 남는 것이었다.
물 가운데로 가서 돌려주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고 당겨주기도 하니 애들이 재밌어 한다. 재첩 캐는 아줌마들을 보니 얼마나 올라갔는지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올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애들하고 놀 수밖에.......
물이 흘러가는 곳으로 애들을 태운채로 아이스박스 뚜껑을 밀어 놔 봤다.
애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재미가 좋은가 보다.
한 애는 앞 쪽을 한 애는 뒤 쪽을 보고 궁둥이를 맞대고 엎어져 있는데, 애들이 스티로폼 모서리를 꼭 움켜잡는다....... 애들도 위험에 대한 인식이 있나 보다.
‘오-잉-? 요 것들 봐라.’
흘러가는 곳에 띄어 놓고 뒤 따라 가면서 그냥 놔 둬 봤다. 애들이 스릴을 느끼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잔잔한 물위로 애들 둘을 태운 배가 유유자적 밑으로 흘러갔다. 나는 손을 놓고 뒤 따라 가면서 한번씩 방향만 잡아줬다.
세월아 내월아 물이 아주 천천히 흐른다. 거의 흐르지 않는 곳도 있고- 그런 곳은 일부러 내가 손으로 밀었다. 그러면서 계속 앞으로 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애들이 이런 스릴을 처음 만끽해 보는 것이었다. 약간 겁을 먹다가도 나를 보고 한번씩 웃는다. 더 해주라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그래 더 해줄게’
“....... ”
“....... ”
뒤를 돌아보니 내가 어느 새 한참 밑에까지 와 있었다. 물이 점점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오전에 낚시를 해봐서 알고 있었다.
‘그만 올라갈까?’
애들 손을 보니 스티로폼 모서리들을 꼭 쥐고 있었다.
애들 얼굴을 보니 두려운 기색이 없다. 애들이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내려가 보자.’
물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래, 무릎 찬 곳까지만 가보자.’
2-30미터로 벌려진 강폭이 모퉁이를 돌면서 5-6미터 정도로 좁아지면서 수량이 모아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오전에 낚시한 물웅덩이가 나오고 ....... 그쯤에서 물이 ....... 반은 물웅덩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가고....... 반은 물웅덩이를 비켜가면서....... 바로 옆으로 빠지면서 유속이 급속히 빨라지고 깊이도 급격히 깊어지는 곳이었다.
‘조금만 더 가다가 밖으로 빼내자. 쪼금만 더.......’
애들 태운 배를 여태까지 뒤에서 뒷짐 지고 따라오기만 하다가 허리를 수그려서 스티로폼을 최대한 빨리 잡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조심조심 뒤에 따라왔다. 여태까지는 물 깊이가 깊은 곳이라야 무릎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물이 고여 있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서 물이 조금씩 흘렀다가-멈췄다가를 반복하면서 느그적-느그적 거렸는데....... 이제부터는 몇 백 미터를 계속해서 내리막이었다.
‘이제 그만 잡자’ - 하고 생각하고 잡으려고 하는데 ....... 앞에 조그맣게 거품 일어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잡으려는 순간....... 스티로폼 배 왼쪽 모퉁이 부분만 푹 가라앉았다.
거품지역이라 물의 부력이 떠받쳐주지를 못하고 거품 밑에 물에 닿을 때까지 스티로폼 그 부분이 같이 처박힌 것이었다.......순간 앞에 타고 있던 준이가.......물속으로 굴러들어가 버렸다.
‘오-오.......’ - 등골이 오싹해졌다. 긴장하고 있던 차였는데 소름이 쫙- 끼쳤다....... 준이가 물 속에서 한바퀴 뒤집혀졌다....... 그냥 놔뒀다.
‘서두르면 안 된다....... 침착해야 된다.’ - 준이가 손발을 허우적거리면서- 한바퀴를 또 굴렀다....... 물살이 세 진다....... 같은 속도로 쫓아갔다.
‘서두르면 안 된다. 잘못 손댔다가....... 슬기마저 엎어지면 큰일이다....... 이 물 속도 같으면....... 하나는 건질 수 있어도 둘은 힘들다.’
‘오-오-’
휩쓸려가면서 준이가 또 한 바퀴를 뒤집어졌다. 손발을 허우적거리면서....... 놀란 눈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결정해야 된다.’
스티로폼에 타고 있는 슬기도 겁을 먹고 있다....... 스티로폼이 물 속 준이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스티로폼에 탄 슬기가 준위를 앞질러 가려고 했다.
‘결정해야 한다.’
두 손으로 잽싸게 슬기를 안아서 오른쪽 겨드랑에 끼웠다....... 허겁지겁 준위를 쫓아갔다.......준위가 한바퀴를 또 돌려고 하는 찰라 ....... 준위 옆에 바짝 붙었다. 허리를 숙여서 잽싸게 왼팔로 준위 허리를 거머쥐었다....... 딱 잡혔다.......안 넘어지려고 두세 발자국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중심을 잡고 섰다....... 물 깊이가 벌써 허벅지까지 찼다.
길게 호흡을 한 번 하고 돌아섰다....... 애들을 꼭 안았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꼭꼭 눌러가면서 천천히 나왔다....... 몇 걸음만 넘어지지 않고....... 실수 없이 나가면 된다........ 성공했다.
‘휴-우-’ - 애들을 봤다. 아-아! 그런데 그 경탄스러움! 준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오- 이럴 수가!
‘훠-이?’ - 준이를 한번 놀라게 해봤다. “까르르륵-” “하하하하 -”
‘임마?’ 또 한번 확인해 봤다. “하하하하-” “까르르륵 -”
오-오- 그 놀라움, 그 신비!
준이가 물 속에서 물을 한 모금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그 어린애가 그 순간적인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적응을 했던 것이다. 눈물이 다 날 정도로 경탄스러웠다.
‘아-해 봐? 아-아-?’
“아-아” “아-아” - 슬기도 같이 ‘아-아’ 했다. - “까르르륵 -” “하하하하 -”
힘이 쫙 빠지면서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오-오 감사합니다.’ 하늘을 보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마음속으로 절을 했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어디 있는지 봤더니 웅덩이 아래쪽 모래 턱에 걸려 있었다. 순간 누가 보지나 않았는지 - 얼른 뒤를 돌아봤더니 .......저 위 쪽에서 재첩 캐러갔던 아줌마들하고 미희가 내려오고 있었다.
‘슬기야, 준아- 엄마 온다. 엄마한테 가자’
애들이 방긋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체험한 것처럼....... 이 ‘속없는’ 애들이 준이 빠진 것까지도 재미로 알았던 것이다. 보호자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힘이 솟아났다.
“승환이 너는 애들을 데리고 어디까지 갔다 오노?”
‘저어 밑에요. 재첩은 좀 잡으셨어요?’
“잡기는 잡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많이 없네. 씨알도 잘아지고”
‘어디 좀 봅시다. 아이-고 많이들 잡으셨네요. 씨알도 좋구만?’
“그래도 아침에 잡은 것에 비하면 양이 안 찬다야?”
‘이만해도 굵은 씨알이요. 여기 아니면 이 정도 씨알이라도 볼 수 있는가요?’
“하긴 니 말이 맞다. 여기 아니면 이런 재첩을 어디서 보겠노? 우리가 아침에 진짜 꼬막만한 재첩을 오지게 캐 가꼬 이런 좋은 재첩을 캐 놓고도 양에 안 차 하는갑따? 쌀 씻는 자리 여기가 제일 명당이구만.”
‘그런 것 같네요. 자, 영순이 이모하고 영자 이모....... 애기 받으세요.’
“조카, 애들 본다고 수고했네.”
‘수고하기는요, 10년 감수했구만? 준이가 야무지구만, 큰 인물 되겠어요? 슬기도 야무지고....... 애들이 겁이 없네.......’
“너 뭔 일 있었나?”
‘뭔 일 없었어요. 애들하고 그냥 같이 놀았지.......’
“언니들, 시원한 음료수 하나씩 마시자.......어? 그런데 왜 아이스박스 뚜껑이 안 보이노?”
‘아아- 뚜껑, 내가 애들하고 물놀이 한다고 저 밑에다 두고 왔어요. 지금 가서 가지고 올께요.’
“너 애들하고 뭔 일 있었던 것 맞제?”
‘뭔 일은 뭔 일? 애들 이렇게 말짱한데? 그렇지 애들아 -응? - 응 그렇지?’ 애들이 또 환하게 웃었다.
‘거봐요. 애들이 나랑 노는 것이 재밌었다고 하잖아요?’
“그렇긴 그랬는가뵈? 니가 애들을 잘 보는 갚다 야”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약혼녀와 수영]
아줌마들은 텐트 쪽으로 갔다.
‘미희야 저 밑에 같이 한 번 가자. 수영장 멋진 것 하나 있더라.’
“그래, 질부 같이 갔다 와. 어른들 눈치 본다고 여기까지 와서 데이트할 시간도 없었네.”
“.......”
미희하고 물웅덩이에 갔다. 스티로폼이 그대로 있었다. 미희한테 수영을 할 줄 아냐고 물어봤더니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했다. 잘 하냐고 물어봤더니 쪼금만 할 줄 안다고 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 볼 테니까 나중에 들어와.’
준이 빠진 곳에서부터 웅덩이 쪽으로 걸어가 봤다. 허벅지까지 깊어진 곳 바로 앞에서부터 갑자기 가슴까지 물이 깊어졌고 혼자서도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물살이 셌다....... 소름이 쫙 끼쳤다....... 다시 한번 하늘에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절을 했다.
물살이 웅덩이로 들어오는 입구 부분은 어른 키를 훌쩍 넘을 만큼 깊었다. 반대 방향으로 갔더니 물 속에 모래톱이 형성되고 있었다. 깊이가 어른 가슴 깊이로 수영 못하는 사람들 수영하기 딱 좋은 깊이였다.
미희가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해서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머리박고 숨 안 쉬고 7-8미터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두 손으로 물을 막 긁고 두 발로 물짱구를 텀벙대는 완전한 개헤엄이었다....... 딱 빠져죽기 쉬운 수영 실력이었다.
나는 수영이 선수급이다. 미희한테 수영도 가르쳐 주고 물 속에서 오랫동안 놀았다. 너무 이뻤다. 풍만한 궁둥이에, 뭉클한 가슴에, 유들유들한 허리에.......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해거름이 되어서 웅덩이에서 나왔다. 웅덩이 물이 낮 동안 햇볕을 받아서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서 손발이 부르틀 때까지 둘이서 물 속에서 놀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박스 뚜껑을 들고 아이스박스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스박스를 양쪽에서 들고 텐트에 왔더니 벌써 저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녁을 일찍 먹었다.
[섬진강 달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칠 때쯤 둥그런 달이 떠올랐다. 텐트에 모기향을 여러 개 피워드리고....... 고스톱 팀들은 또 고스톱을 쳤다. 물가라 공기가 금방 차가워졌다. 반면에 바닥은 뜨거운 기운이 그대로 있었다. 백사장이 낮 동안 달구어져 있었던 것이다. 달이 높이 떠오를수록 주위가 환해졌다.
미희하고 백사장을 거닐었다. 어둠은 때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안 보인다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데이트할 때다. 가능하면 텐트에서 멀리 갔다....... 하루 정도 보름달이 덜 된 둥그런 달이 도시에서 보는 달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때 내가 스물아홉- 미희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달을 보니 달 주위로 테두리가 둘러 있었다. 달무리였다.
달무리지면 비 온다는데.......?
저녁 11시쯤에 취침에 들어갔다. 고스톱 팀들도 낮에 축구를 해서 피곤해서인가 내일 보기로 하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미희하고 독립된 텐트를 차지했다. 다같이 잠자리에 들자 그야말로 고요한 정적이었다. 옆에서 뽀시락 거리는 소리....... 코고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래서 미희를 안고만 잤다. 그 즈음이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서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난치나?]
꿈속에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아주 멀리서 들렸다. 호각 소리가 천천히-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그러다가 호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호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당히 가까이 와 있었다. 그러다가 호각 소리가 또 멈추었다. 얼마 있다가 또 호각소리가 들렸다. 한 층 가까이 온 소리였다.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다. 잠을 깼다. 미희를 꼭 껴안았다. 갑자기 -
“삐리리릭- 삐리리릭 - 삘리리릭-”
진짜 호르라기 소리가 들렸다. 우리 바로 위 둑에서 부는 호각 소리였다. 곧이어 후라쉬 불빛이 텐트를 비췄다.
“하동군청---에서 알립니다. 야행객 여러분들은 즉시 텐트를 걷고 철수하세요
다시한번 하동군청---에서 알립니다. 야행객 여러분께서는 즉시 철수하십시오.......“
‘아이-, 어느 새끼가 남 잠자는데 이렇게 장난을 쳐.......?’
짜증이 날려고 했다. 촌동네 놈들이 야행객들 골탕 먹인다고 밤 깊은 때에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그 때 - 엠프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행객 여러분, 거기서 텐트치고 잠자고 계시는 야행객 여러분-
텐트 걷고 철수하세요- 지금 바로 텐트 걷고 철수하세요-
비가 많이 옵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지금 바로 일어나서 철수하세요-”
‘.......?’
비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니 비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아니, 비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로 들렸다. 가랑비 정도나 오는 모양이었다. 호각소리도 나고 마이크-엠프도 있고 후라쉬도 있는 것 보니 공무원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저 양반들이 지금 미쳤나? 가랑비 정도 오는 것 가지고 철수는 무슨 철수야? 이 양반들이 쪼금 심하시네.......’ 공무원들이 자기들 편할라고 과잉조치를 취한다고 생각했다. 미희도 잠이 깼다.
‘일어나지 말고 그냥 자, 몇 번 말하다가 그냥 갈 것이니까’
“....... ”
그냥 모른척하고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았으므로....... 옆에 텐트들에서도 누구 한 분 일어나는 기척이 없었다. 후라쉬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말이 고약해졌다....... 욕도 한번씩 섞였다.
“당신들 지금 뭐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요. 비가 많이 오고 있고- 물이 차 올라오고 있습니다. 당장 철수 하시오.” - 목소리가 명령조로 완전히 바뀌었다.
‘에이 설마? 누워 있어, 내가 한번 나갔다고 와볼 테니까’
[오- 홍수!]
일어나지 않으려다가 생각보다 저 사람들이 끈질기게 버티고 서 있어서....... 참고 있던 오줌이 마려오기 시작했다. 텐트 자크를 열고 나왔다. 텐트에서 나오자 후라쉬 두 개가 나를 비춰대기 시작했다.
“어이-? 일행들 깨워서 지금 바로 철수하세요. 물 올라옵니다. 저 위에서는 물난리 나고 난리 났어요. 일행들 빨리 깨워서 철수하세요.”
텐트 밖으로 나와 보니 둑 위에서 두 사람이 사력을 다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동군청에서 나온 공무원들이었다. 안에서 들었던 것보다 밖에 나오니 빗방울이 생각보다 굵었다. 텐트 천이 소리를 흡수해서 가랑비 소리로 밖에 안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 백사장 모래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고운 모래가 소리를 거의 완벽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상당히 굵은 빗방울이었는데 그야말로 비소리가 거의 안 나는 지경이었다....... 백사장 한 가운데에 있었으니 비오는 소리가 안 들렸을 수 밖에.......(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는 이 부분을 꼭 참조하시여 강가에서 야영하실 때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설마?.......’
외할아버지-외할머니도 주무시고 계시고....... 아버지-어머니도, 외삼촌-외숙모도, 이모-이모부들도 한 참을 주무시는데 ....... 쉽게 일어들 나시라고 깨울 수가 없었다. 무시하고 모른 척 했다.
“계곡 물 금방 도착 할겁니다. 빨리빨리 깨우세요. 저 위 쪽에는 물난리로 난리 났어요.”
공무원들이 거짓말로 사람을 겁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잠도 덜 깼다....... 무시하려고 했다.
텐트 옆에서는 오줌을 못 누겠고....... 둑 쪽에는 후라쉬 두 개가 나를 집중적으로 비춰대니....... 반대편으로 가서 오줌을 눠야했다. 물가 쪽으로 갔다. 한 20미터 정도 모래밭 위를 걸어가서 물건을 내 놓고 오줌을 누고 있는데....... 뒤에서 비치는 후라쉬 불빛에 .......강물이 언뜻언뜻 보였다.
아! 그런데 이게 웬걸? -낮에 봤던 물이 아니었다. 낮에는 강물이 2-30미터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강물의 폭이 40-50미터는 되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줌을 급히 마저 싸고- 털지도 않고 .......뒤돌아서 뛰었다.
‘일어들 나세요. 물들어 옵니다. 빨리 일어들 나세요. 삼촌?-아부지?-이모부들?- 빨리 일어들 나세요- 큰 일 납니다.......’
........ ....... .......
아무도 텐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모부- 삼촌- 아버지-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물들어 옵니다. 빨리 일어나셔야 돼요.’
미희가 맨 먼저 나와서 신발을 신었다. 이모부들 텐트 두 군데서도 불을 켜고 텐트 자크를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강 쪽으로 한 번씩 보시더니 -
“야, 무슨 물이 들어온다고? 물도 안 보이잖아?.......”
‘아니라니까요. 내가 보고 왔는데 물이 들어오고 있다니까요! 강폭이 벌써 나제보다 배는 넓어졌습니다.’
".......?"
".......?"
“어이? 참말로?.......”
‘15분 정도 후에는 여까지 물 들어옵니다. 빨리 챙겨서 나가야 돼요.’
".......?"
".......?"
....... ....... .......
텐트에서 고개만 내민 사람들이 텐트에서 나오기가 죽기보다 싫은 표정들이었다.
“야, 그래도 백사장이 아직 백미터는 더 남아 있겠는데 무신 15분? 여까지 물이 들어오기나 하겠나?.......”
‘아니라니까요, 15분도 안 걸릴 거십니다. 여기가 지리산 계곡 미치라 한번 본 물 몰려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들이 닥칩니다- 후라쉬들 먼저 챙기세요. 빨리요-빨리요-’
“야, 엥가니 설치고 차근차근히 해라. 물 들어 올라믄 한 시간도 더 있어야 되겠따?.......”
우리 식구들이 일어나서 텐트마다 불을 켜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동 군청 공무원들이 물러갔다....... 다급한 소리를 하면서 - 부탁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간다면서--? 갔다.
“아저씨들- 다시 주무시멘 안 됩니다. 금방 물 차 올 거십니다........ 그리고요- 옆에 텐트에 사람들도 깨워서 가치 좀 나오세요. 우리는 저 위로 또 사람들 또 깨우러 가야 됩니다....... 옆에 사람들 꼭 쫌 깨우세요.......꼭 깨우세요!.......”
“알았어요. 걱정 마시고 다른 사람들 깨우러 가세요........”
집안에 기둥이신 외삼촌이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시기 위해서 후라쉬를 가지고 물 있는 곳을 비추면서 직접 확인하신다고 가셨다. 반도 못가서 다시 되돌아오셨다.
“진짜 물이 차 올라오고 있네?- 벌써 낮에 보다 배도 더 불었따 - 영순이 하고 영자는 애기 있으니깐- 아버지-어머니 모시고 먼저 차로 가라. 후라쉬 하나 받아 가꼬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모시고 조심해서 올라가그라....... 물이 낮에 보다 많아지기는 했는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이왕 일어났으니까 싸목-싸목 챙겨가지고 나가자.......”
‘삼촌 그게 아니라니까요? 여기는 지리산 미치라 한 번 올라오기만 하면 금방 올라온다니까요?! 최대한 빨리 하세요. 최대한 빨리....... 텐트는 제가 걷을 테니까 텐트 안에 있는 짐들 먼저 챙기세요....... 꾸물거리시면 안 됩니다.’
미희는 벌써 우리 텐트 안에 짐들을 지 가방에 다 담고 있었다. 먼저 우리 텐트를 순식간에 걷어서 처리를 했다.
옆에를 봤더니 우리 말고 텐트들이 몇 동 더 있었다. 야영을 하려고 저녁에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 안 일어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물가 쪽으로 .......가깝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후라쉬를 텐트마다 비추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홍수납니다. 철수하세요. 홍수납니다. 철수하세요. 빨리 짐 챙겨서 나가야 되요-’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텐트 몇 군데서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만....... 다시 문을 내려서 자크를 잠그고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보니 다 20대들이었다.
“승환아, 니- 나중에 물 안 들어오면 우짤래 - ? 우리 것이나 해라. 내가 봐도 물이 안 들어오겠꾸마는?”- 잠자는 데 깨워서 설치는 나한테 짜증들이 나 있었다.
“그만 해라 승환아, 아까 고스톱 치면서 밤에 본께 다 젊은 사람들이더라. 물차도 갑자기 차는 것도 아닐 거시고....... 젊은 사람들끼리 와 있는데 다 알아서 안 하겠나? 우리 식구들은 일단 일어났으니까 우리 식구들이라도 천천히 챙게서 나가자.”- 잠 깨웠다고 누구 할 것 없이 불만들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주무시다가 나오시기가 싫으셨는지 버티고 계시다가 외삼촌이 “나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고 말씀드린 후에야 텐트에서 나오셨다. 이 때 두 분 어른이 옷 챙겨 입으시고 신발 신고 하신다고 시간이 몇 분 걸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텐트에서 나오시자 그 텐트에 들어가서 정리정돈을 시작했다 - 아이스박스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은 아이스박스에 담고 - 다라이에 담을 것은 다라이에 담고 - 가방에 담을 것들은 가방에 담고 - 박스에 담을 것들은 박스에 담고 - 비닐 봉지에 담을 것들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 밖으로 끄집어냈다.
‘텐트는 이모부들하고 저하고 걷을 테니까요 여자 분들은 큰 짐들은 놔두고 작은 것부터 챙겨서 바로 차 있는 곳으로 나르세요. 아버지하고 외삼촌도 같이 나르시지요?
“그라믄 그래라 - 형님, 우리는 들 수 있는 것부터 저 쪽 뚝 가로 나릅시다........”
두 이모부가 조를 맞춰서 텐트를 걷었다. 그 때 물가 쪽에서 갑자기 텐트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물가 쪽으로 훨씬 앞에 있던 텐트들이었다.
“으으- 물이다?.......” - “물이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앞에 떨어진 텐트-들에서 랜턴이 켜지고....... 가스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을 켜는 것을 보니 벌써 물이 그 텐트들을 넘어서 차박차박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 텐트 하나하나에서 사람들이 놀라서 두 명 세 명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스등불 밑으로 물들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뭐꼬- 뭐-어꼬? - 야- 빨리해라 빨리- 금방 전까지만 해도 물이 저-만치 있었는데- 벌써 요 바로 앞에까지 와부렀따?”.......가스등 불빛 아래- 물을 본 이모부들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안 일어난 텐트들이 있었다.
"홍수다!- 물이야?- 홍수다- 물이야?- 홍수야-! 물이야-"
우리 텐트를 걷다 말고 두 이모부하고 나하고 텐트들에 후라쉬를 비춰가면서 벼락가치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막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나와서 가스등을 켜는데 ....... 불빛 밑으로 물이 참방참방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보다 물가 쪽으로 앞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텐트를 접지를 못하고 통째로 끌고 나오려고 했다....... 물이 차오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급하게 튀어나온 사람들이 랜턴을 물가 쪽으로 비쳐 보더니....... 텐트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바로 눈앞에서 강물의 본류가 넓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둥대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물건들을 챙기려는 사람 .......그냥 놔두고 몸만 빠져나가자는 사람....... 뒤에 사람이 - 텐트를 뒤지고 있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사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중에....... 용감한 사람들은 - 텐트를 양 쪽에서 잡고서 - 물가로 끌고 나오려고 하는데....... 안에 내용물들 때문에 - 또 물이 차서 텐트가 끌려오질 않는다....... 물가 가까이에다 텐트들을 쳐놔서 이미 물이 발목까지 차 들어오기 시작했고 .......물이 벌써는 옆에로 밀려들어오는 물뿐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본류 가운데 놓이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코펠 같은 부유물들이 떠내려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야 빨리해라....... 저 쪽에는 물이 벌써 넘어와따........ 찰랑거릴만큼 들어왔네.......”
물이 그 사이에 벌써 백사장에 반은 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후라쉬를 삐-잉- 둘러서 비춰봤다. 백사장 물 위로 마른 대나무 이파리들이 - 움직이면서 - 떠다니고 있었다 물이 슬글슬금 이 쪽으로 기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두 이모부가 자기들 자다가 일어난 텐트를 느그적거리면서 걷고 있다가 물들어 오는 것을 확인하고선 - 갑자기 동작을 빨리해서 해치우고서 - 어머니하고 이모들 주무시던 3-4인용텐트에 쫓아가서 순식간에 걷어내고 있었다.
‘이모부 그 쪽 텐트 다 접어가면 한 명만 접꼬- 한 명은 빨리 이 쪽으로 오세요-’
두 이모부가 3-4인용 텐트 3개를 마무리하다가....... 마지막 텐트를 접다말고 한 명은 먼저 큰 텐트 쪽으로 쫓아오셨다....... 왕복달리기 할 때처럼 텐트를 삥 돌아가면서 핀을 뽑아서 한군데 던져 놓고 텐트를 땡게서 무너뜨렸다 - 대형 텐트라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 텐트를 얼렁뚱땅 대충 접어서 말았다. 텐트를 다 접고 났을 때는 그 순간적인 시간 동안에 우리 발밑에까지 물이 추적거리기 시작했다. 쑥-쑥- 물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 텐트를 메고 둑으로 냅다 달렸다.
‘물이 금방 들어오니까- 짐을 차에 까지 가져가지 말고- 둑까지만 우선 갖다 놓고- 나중에 차에다 실어요.’
“그래야겠다 - 빨리빨리 해라 - 물 다 왔따 - ”
우리 텐트까지 물이 오는데 15분 정도를 봤는데 8-9분 만에 물이 도착한 것이었다. 센 물살은 아니었지만 - 물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백사장에 물이 슬슬 기어 들어와서 발바닥을 적셨다.
‘짐 더 없으니까- 여자들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마세요. - 아이스박스하고 다라이만 가져오면 됩니다.’
.......
.......
이모부 두 분하고 나하고 텐트를 걷을 동안에 여자 분들이 잔짐들을 나르셨고- 아버지하고 외삼촌이 짐을 많이 날라놓은 덕분이었다.
맨 마지막 짐이 대형아이스박스하고 재첩 담아놓은 다라이였다. 두 이모부하고 나하고만 맨 마지막 짐을 가지러 다시 강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가 오는데도 보름달에 가까운 밤이라 칠흑같은 어둠은 아니다. 그래도 깜깜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사방천지가 백사장이라 주위가 밝다는 인식이 되어 있었는데 물들이 갑자기 차 들어오면서 바닥의 색깔이 어둡게 변해버린 것이다. 인식이 거기에 아직까지 적응을 못하고 있다........ 깜깜했다.
후라쉬 불빛으로 강 쪽을 휘저으면서 짐을 가지러 들어가는데 .......우리보다 물가 쪽에서 텐트를 치고 있던 사람들이 텐트를 포기하고 - 빈 몸으로 - 또는 비어 있는 배낭만 들고서 마구 도망 나오고 있었다........
이모부 두 사람하고 나까지 세 사람이 우리 텐트 친 자리로 후라쉬를 비추면서 막 달렸다....... 후라쉬를 비춰보니 다라이가 물 위에 떠서 빙빙 돌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 저것 떠내려가면 안 되는데.......재첩 담아놓은 다라이였던 것이다.물이 급속하게 차오고 있다. 첨벙거리면서 - 세 명이서 같이 - 마구 뛰었다. 혼자 같으면 못 들어갔을 것이다.
‘이모부들은 아이스박스 잡고 뛰세요....... 제가 다라이 맡을께요- ’
“그래라, 우리가 아이스박스 맡을 테니까 니가 다라이 맡아라- ”
목표지점을 향해서 막 뛰는데 물이 우리 쪽으로 - 적의 대군처럼-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부유물들이 난리가 아니다. 아이스박스는 무게가 있어서 고정되어 있는데....... 다라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쫓아가서 잡았다 - 잡자마자 뒤로 튀었다.
“첨펑-첨벙, 첨펑- 첨벙-”
“야아- 빨리 뛰어라 빨리 -”
“헉-헉- 헉헉 - 헉헉 - 컥-컥 - 컥컥.......”
“야- 큰 일 나겠다. 빨리 뛰어라- 빨리”
“빨리 가요-빨리- 앞만 보고 뛰어요-”
둑 위에서 식구들이 후라시를 비추면서 빨리 나오라고 난리가 아니다 - 세 명이서 뒤를 돌아보면서 - 앞으로만 마구 뛰었다. 둑까지의 거리가 60-70미터 정도 되었다. - 물이 이제는 뒤에서만 밀려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도 내려오고 있었다. - 그 순식간에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물 깊이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날 수 없었다. - 둑 쪽으로 계속해서 달리는 데도 물이 무릎 밑에까지 차올랐다. -
무거분 짐을 들고 무릎까지 차오는 물 속을 나오는데.......속도가 나지 않았다.......
불과 2-3분 사이에 강 전체 수위가 2-30센티 가량이 높아진 것이었다. 2-3분전에만 해도 우리 텐트 친 자리가 발바닥에 물이 추적거릴 정도밖에 안되면서 강폭이 80미터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금새 150미터 정도 되는 강폭 전체가 여기저기서 흘러드는 물로 뒤덮이고 있었다.
첨-펑-첨-벙- - 첨펑-첨펑....... 한참을 뛰어나왔다........ 강둑 20미터 정도를 남겨놓고....... 드디어....... 물이 정강이 깊이 정도로 낮아졌다.
"후우-" "화-아- " '오-우----'
거기는 낮에 봤을 때 모래-턱이 형성되어 있던 자리였다. 물이 안 찼을 때는 그 높이를 실감 못 했었는데 거기가 물 속에 잠기니 주위하고의 높이-깊이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모래 턱이 대밭까지 그대로 연결되었다.......
유속- 다리에 휩쓸리는 물의 압력도 갑자기 잔잔해진 것을 느꼈다.......
걸음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세 명 다 공포에 힘이 빠져나가서 다리가 후둘거렸고 -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지대까지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맥이 풀려버렸고....... 헛웃음이 나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스박스를 두 명이서 들고- 큰 다라이를 혼자서 들고 뛰면서.......
뒤에서 쫓아오고 - 위에서 몰려오는 물의 공포에서 세 명이서 같이 죽을 뻔했다가 같이 살아난 것을 알았다....... 순간 허탈해 지면서 위안의 헛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 짧은 순간에 세 명이서 죽음의 공포를 같이 느끼고 살아났다는 안도감을 같이 느꼈다.
“아아-아하하하.......”
“우후-으흐흐흐.......”
“이이-이히히히.......”
모래 턱을 걸어 나오는데도 물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세 명이 강 가장자리에 다 와갈 때는 강의 본류가 벌써 강 전체를 덮고 있었다. 처벅처벅 걸어나왔다.
잠시 후에는 물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서 가운데서 밖으로 밀고 들어오는 물은 없어지고 .......완전히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는 물이 되었다.
딱- 10분 만에 철수를 완료한 것이었다. 10분 만에 물이 전 강바닥을 덮은 것이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둑 위에서 - 넋이 나간 채로 - 물 차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우리보다 물가 앞쪽으로 텐트를 쳤던 사람들이- 텐트를 접지를 못하고 통째로 가지고 나오다가-결국 몸만 도망쳐 나왔다. 물가 가까이에 텐트를 쳤다가 순식간에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고- 그 때는 일어나서 텐트를 정리해서 걷을 분위기가 아니었고- 텐트를 끌고 나오기 시작했는데 강가에 닿기 전에- 물의 본류가 벌써 위에서 아래로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결국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물에 겁을 먹고........ 몸만 도망쳐 나왔다.
일어나라고 했을 때 안 일어났던 사람들이 온 몸에 물을 홀딱 뒤집어쓰고 텐트를 살리려고 해도 텐트를 살리지 못하고 끝내 텐트를 버리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불과 5-6분 차이로 우리만 살림 다 건져서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올 때까지 후라쉬로 신호를 해줬다. 나오는 사람들이 애처로움과 안도의 마음이 같이 보였다.
“후-우-” .......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쏟아졌다.
“후우-큰 일 날뻔 했구만.” -
“어떻게 10분 만에 그 넓은 백사장이 물에 잠길 수가 있는고.......?” -
“만약에 공무원들이 와서 안 깨웠으면 노인네부터 애기들까지 온 집안이 몰살당할 뻔 했구만?.......” -
“와아- 오오- 살 떨리네.......” -
“이야 무섭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죽겠제.......?”
[ 살았다- ]
강물을 보니 본류에서만 올라오는 물이 강물의 다가 아니었다. 우리 바로 앞에서도 금방 도랑물이 되어서 물이 쏟아지면서 거침없이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 그것은 냉정했다.
“이 강을 따라서 이런 또랑들이 얼마나 많겠어?”
“이런 또랑만 있겠나? 이 큰 지리산에 골짜기들이 얼마나 많겠냐고?”
“그 골짜기에 물들이 본류에 만나는 순간 홍수가 되겠지요?”
“인자 본께네 그렇네, 아주 순식간이구만.......”
식구들이 자리를 뜨지를 못했다. 식구들 여럿이서 후라쉬를 가지고 우리 있던 자리 여기저기를 비춰봤다. 우리가 텐트 치고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어져 버렸고, 이미 본류의 중앙이 되어 있었다. 150미터 정도 되는 강바닥에 물이 다 덮어지자 이내 수위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본류 쪽을 후라쉬로 비춰보니 .......이미 흙탕물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신경을 써 보니 물 흘러가는 소리였다.
“쿠-웅 쿠-웅 - 쿵-쾅-쿵-쾅 - 콰-아- 쏴아 -”
어제 저녁때까지만 해도 겨우 발목을 적시고 깊은 곳이라야 무릎 정도 밖에 안 되는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어져서 흘러가는 평탄한 내 였는데....... 150미터 강폭 전체를 다 채우고도 건너편 산비탈을 갉아 내려가는 무시무시한 강물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앞에서 시시각각 물의 수위가 높아졌다. 모든 것들은 잠겨버리고 - 휩쓸려가고 ....... 오로지 흙탕물뿐이었다. 식구들 모두가 소름이 끼치도록 질렸다.
“무섭구만.......”
".......?" - "......." - ".......?" - "........ “ .......?" .......
[시골에 - 도시 손님]
“우리 집으로 가입시더.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겠네예?”
“자네 집에서 하루밤 신세 좀 질 수밖에 없을 것 같구만.”
“신세는 뭔 신세예? 이렇게 비 오는데도 집으로 안 들어오시면- 촌 사람들 못난 생각에 집이 허름해서 그런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슴니더, 챙겨서 빨리 가입시더.”
“자네 말도 맞겠네, 그라믄 식구들 다 데리고 가세나.”
하동 악양 -마을에 있는 이모부 집으로 갔다. 시골집 그대로였다. 역시나 사돈어른이 우리 식구들이 들어올 것을 알고서 온 집안에 불을 다 켜 놓고 계셨다. 도착하니 새벽 3시는 넘고 4시는 안 됐던 것 같다. 방마다 청소를 다 해 놓으시고 - 불을 켜 놓으시고 ....... 마루 처마 밑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불을 켠 것 같지가 않았다. 시골에서 전기세 아낀다고 전기-촉을 약한 것을 끼워놓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모래 범벅이 되어서 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수도가로 가서 씻을 때에는 뒤에 사람들이 후라쉬를 잡아주어야 했고......., 대충들 씻고 사람들이 -
“아침밥은 늦게 먹자”고 하고서 이내 다시 잠에 떨어졌다.
[섬진강 재첩꾹- 국물 맛이 끝내줘요!]
아침밥을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 먹었다. 며느리인 영순이 이모하고 여러 이모들이 아이스박스에 있는 고기하고 양념들을 같이 준비해서 시댁에 있는 반찬을 곁들여서 상을 차렸다.
그런데 밥상에 보니....... 커다란 국그릇들이 된 데로 올려져 있었다....... 재첩국 그릇이었다.
“진짜 재첩으로 본토백이 사돈어른이 이 동네 스타일로 끊이신 것이니까 진짜 재첩-국 맛 한번들 보세요.”
“우와 -? 그나저나 대접부터가 무지하게 크네, 이것이 대접인교 양판인교? 하하하하”
진주에서 외갓집 막내 이모한테 장가 온 '허씨' 성 가진 막내 이모부였다. 알고 보면 이 양반 허서방-이모부도 고향이 '산청' 촌놈이다. 웃낄라고 해본 소리였다.
“이 사람아, 촌에서 살면서 일할라믄 밥을 많이 먹어야 써. 밥 많이 안 묵고 일 해낼 수 있는가?”
“요새는 촌에도 사람이 없어 가꼬 안 쓰던 것이었는데....... 슬기 애비가 처갓집 식구들 올지도 모른다 케서 새로 다 끄집어내서 - 따까서 챙겨 논 거라예....... 시골에서도 인자는 이런 밥그릇 가지고 밥먹는 사람 벨로 없어예.”
.......
“처형- 빨리 재첩이나 주소-”
“어허-이, 이 사람아 -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데 이 귀한 재첩을?....... 자, 아버님 어머님한테 먼저 드리세요 - ”
“하아!- 이 집 막내 사우 - 재첩 한 번 먹을라다 사람 상놈 다 돼 불것네.......”
"하하하하-" - "하하하하-" .......
‘냄새부터가 상큼하네요?’
온 방안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하는데도 솥에서 나오는 부글부글 올라 온 재첩국 김으로 진하지 않은 재첩국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냄새를 어떻게 표현하기는 힘들고.......‘이른 새벽에 풀밭에 나가서 풀과 흑 냄새를 같이 맡을 때 나는 그런 향’이었다.
“소금은 안 탔으니까네 입맛대로 타 드세요....... 우선은 예- 소금 타지 말고 한 번 잡숴 보이소. 그 맛도 깔끔하고 시원함니더. 그라고 나중에 밥하고 같이 드실 때 소금 타 드시고예.”
“아- 소금 안 넣고 먹어도 국물이 깔끔하네, 히야 - 국물맛 시원하다- 끝내주네- ”
“어제 강 까에서 우리끼리 먹을 때하고 맛이 또 틀리네- ?”
“암만 깨끗한 모래에 사는 재첩이라 캐도 해감을 충분히 해야 시원한 국물 맛이 납니더....... 재첩 끊이는 방법은 암껏도 없어예....... 그냥 물 붓고 끊이기만 하면 되는 기라예- 나중에 정구지 쪼매 너코 소금 쳐서 후-ㄹ-훌- 마시면 그것이 젤 마싯써-예”
“아이고- 그러면 이 동네 사는 여자들은 국거리 걱정은 없겠네요, 사돈 어른?.......”
“참말이라예, 접세기 한 개만 가꼬 가멘 금방 국꺼리 하나는 자바오지예. 이 동네 살면 그것 하나는 조아예- 반찬 걱정이 없음니더. 이 국 한 개하고 김치 쪼가리만 있으멘 밥 한그륵 다 먹어었예”
“사돈 어른, 재첩이 항상 이라고 많아요?”
“그렇지는 않아예....... 진짜 재첩 참말로 많이 잡아오셨네예....... 동네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잡기 힘들어예 - 그라고 이라고 큰 재첩은 보기도 힘들고예, - 재첩 굵은 것 본께네 자갈밭 많은 데서 잡으셨는가 보지예?”
“대밭 있고, 밭뚝 있는데 안 있나? 거기서 잡았다.” - 홍서방-이모부가 답했다.
“하기사 이것 잡은 품이 보통 품이 아니었구만, 아침에 도-오 시간 동안 식구들 전부 다 물 속에 들어가서 잡았고- 여자들은 둘째만 고스톱 친다고 빼놓고- 오전 오후 내내 잡았잖아? 그라믄 그 품이 얼마고?”
“그라고 보니까 보통 품이 아니네요. 다 하니까 사람들 수가 10명 가까이나 되가네요.”
"사실상, 이 동네 살아도 이 만큼 좋은 재첩 이 만큼 많이 잡기 힘들어예- 슬기 에갓집 덕뿐에 지도 진짜 재첩 오랜만에 한 번 먹어보는 것 같네예?"
"아! 그렇는교? 사돈도 맘데로 잡술 수 없는 것인가 보지예? 참말로 귀한 거슨 귀한 거시 맞는가 보네예......."
사람들이 재첩을 입으로도 먹고 말로도 먹고 귀로도 먹었다.
“한 그럭 더 주소” - “나도 더 주소” - .......
"후루룩- 호르륵-호루루-륵.......후루루-륵......."
뜨거운 재첩국을 후-후 불면서 사람들이 연거푸 마셔댔다. 국물 맛이 정말로 시원-깔끔-개운했다. 재첩만으로도 풋풋한 향이 돋아났는데 위에 정구지(부추,솔)을 잘게 썰어서 띄워놓으니 그 맛이 한결 더 풋풋해졌고, 푸르스름한 물이 파르스름해졌다. 국물을 마시다가 목구멍으로 같이 안 넘어간 정구지 쪼가리가 있어서 혓바닥으로 어금니 위에다 올려놓고 살금살금 눌러서 씹어 먹을 때는 입 안이 풋풋한 향으로 가득 찼다.
“자주들 오세요 - 촌에서 둘째하고만 같이 살라니께 심심해 죽겠네요....... 내년에도 또 오세요 - 재첩은 해년마다 먹을맨치는 잡을 수 있을께네요?”
“자주 올께요- 사돈어른, 사돈님도 건강하세요. 부산 오실 때 꼭 연락하시고요.”
“우리 집이 식구들이 많이 없는데, 우리 슬기 애비가 식구들 많은 집안에 장가개서 이라고 보기좋게 잘 지내니까 고마베 죽겠네예- ”
“우리 홍서방이 잘 해요. 싹싹하고- 붙임성 좋고- 성실하고.......”
큰 솥으로 재첩을 한 솥 넣고 삶았는데 - 사람들이 많아서 - 한 양판 남겨놓고 다 먹어버렸다....... 한 양판 남은 것은 나중에 사돈 드시라고 했다.
“꺼이-꺼이- 어어- ” 잘 먹었다.
“맛있게들 드시니까 지가 기분이 너무 좋네예, 슬기 애비가 식구들 온다고 해서 반찬 없어가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인자 걱정이 덜어지네예- ”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짭짜람한 묵은 김치들에다가 된장 짱아찌에다가 밥을 먹으니까 속이 다 개운해 졌네요. 너무 맛있게들 먹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재첩을 다 먹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고모할머니 댁하고 동네 이웃에 자랑하실 것이라고 외할머니하고 외숙모가 별도로 덜어서 챙겨 놓으신 것이 있었다. 하기사 아무리 국물 맞 시원하게 낼려고 한다고 해도 그 많은 재첩을 한꺼번에 다 끊일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풀도 메고.......]
오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퍼부었다가 그쳤다가 몰아쳤다가 수그러들었다가....... 변덕스럽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중에는 사돈어른께서 갑자기 준비할 것이 없었다면서 삶은 옥수수를 한 바구리 내오셨다. 사돈어른께서 어저께 비 오기 전에 밭에 가서 따오신 옥수수라고 했는데 비 오기 전에 따 놓은 옥수수라 물찍물찍 단 맛이 많이 났다. 옥수수가 부드러우면서도 단 맛도 많이 나고 쫀득쫀득 찰지고 맛이 있어서....... 거기다가 사람들도 많아서 옥수수 한 바구리가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아침을 늦게 먹고 옥수수로 점심 요기를 대신한 것이었다.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기 시작했다. 마당에 풀이 제법 많았다. 왕고참인 어머님이 마루 밑 한쪽에서 호미를 들고 나오시면서 말씀 하셨다.
“밥도 공짜로 먹고 잠도 공짜로 잤으니까 방값은 못해도 밥값들은 해?”
“형님, 참말로 그래야겠지요.”
여자들이 마당 가 쪽으로 달려들어서 풀들을 매기 시작했다. 사돈어른이 나오셔서 “미안하니까 하지마시라”고 하는 것을 어머니하고 이모들이 “오랜만에 이런 것 해보는 것도 재미다”고 하시면서 마당에 풀을 끝내 다 메셨다. 한 참 동안에 마당에 풀을 다 뽑으셨고....... 젊은 우리는 같이 뽑다가....... 나중에는 뽑아 놓은 풀들을 털어서 .......두엄 위에다 버렸다.
마당에 풀을 다 메시고 울타리 너머에 텃밭으로 들어가시려고 하는 것을 사돈어른이 호미들을 다 뺐어버리셨다. 어머님이 호미를 뺐기시고 나서도 “감 얼마나 컷는가” 보러 가신다면서 밭에 들어가셔서 여기 저기 왔다 갔다 구경을 하시면서 손으로 키 큰 풀들을 마구 뽑으셨다. 노인네 혼자서 하셔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시니 계실 때나마 조금이라도 거들어 드리는 것이 속이 편하신 모양이었다.
[야영장비 설거지- 그리고 .......이별]
조금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볕이 쨍쨍 났다. 짐 실어 놓은 용달로 가 봤더니 모래가 엉망진창이었다. 밤에 물난리를 만나서 백사장에서 정신없이 짐들을 챙겨서 들고 나왔다가 밤에 몸 만 씻고 그대로 잔다고 짐들은 그대로 놔 둔 상태였다.
짐들 정리도 할 겸 텐트를 빨아야 했다. 텐트에는 그야말로 모래가 반이었다. 이렇게 해서 부산으로 가져갈 수는 없고, 집안에서는 좁으니 물가로 가자고 했다. 어제 텐트 쳤던 곳- 강둑 옆에 은어 있었던 농수로로 가자고 했다.
식구들이 차로 움직이게 되어서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아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 집 며느리인 영순이 이모하고 아들만 남고 나머지 식구들은 사돈어른께 인사를 하고 나왔다. 노인네가 사람 많이 없이 사시다가 사람들이 우-왔다가 우-나가니 .......서운한 모습을 참지 못하셨다.
“내년에도 꼭 오세요. 너무너무 좋네예. 우리 아들이 이라고 식구 많은 집에 가서 잘 어불려 가꼬 산 것 본께 너무너무 좋네요. 내년에도 오고- 내맹년에도 꼭 오세요- 잊어뿔지 말고 꼭 오세요- ”
노인네가 차 있는 곳까지 마중을 나오셔서 “다음에도 꼭 다시 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인자 친하게 됐으니까 한번씩 마음 편하게 찾아뵐 테니까 사돈어르신도 건강하게 잘 지네세요. 부산 오시면 오시기 전에 꼭 연락 주시고요.”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정을 주고 싶어도 정 줄 때가 많이 없으셨던 시골에 나이 드신 아주머님이 무척 서운해 하셨다. 외로움은 누구나 견디기 힘드신가 보다........
[생명의 은인 -하동군청 공무원 분들]
차를 몰고 어제 텐트 쳤던 강둑가로 갔다. 정말 놀라웠다. 150미터 정도 되는 강폭에 물이 꽉꽉 차서 거대한 강이 되어 있었다. 건너편 산 비탈을 긁어내면서 강물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무섭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참 사람이 운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구만?”
“어저께 오랜만에 축구까지 했는데, 만약에 거기다가 술이라도 먹고 잠들었다가 그 양반들이 안 와서 안 깨웠으면 뭔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을 것 아니라고?”
“그러게- 여름 휴가철 한 날 한 시에 온 집안 식구들 제삿날 될 뻔 안 했다고?”
"어저께 밤에 후라시 들고 마이크 잡고 깨우러 다니는 양반들이 온 우리 집안 식구들을 살렸네"
“어제께 그 양반들이 공무원들이었제?”
“예, 하동군청 공무원들이라고 하던데- 무슨 안전대책본부인가 민방위본부인가 ....... 하여튼 하동군청 공무원들이었어요. 하동군청 예비군 중대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하동군청-공무원들 이었던 것만큼은 맞습니다.”
잠결에 들어서 하동군청 무슨 공무원들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 안전관리 하는 분들이란 것까지는 알겠는데 -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하동군청 공무원들이 우리 식구들 다 살렸네요. 그 양반들이 온 우리 집안 식구들 살려 놨네요- 그 양반들 그 비속에 욕들 보데요. 사람들이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는 것들 보세요?"
"우리부터 안 일어났잖아요? 승환이라도 나와서 한번 확인을 했으니까 천만 다행이었어요. 불과 10분도 안 되어서 강 끝가지 물 차오른 것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승환이 너는 물이 그렇게 빨리 차오를 것이라고 어떻게 알았노?"
'저는 산에를 많이 다녀 봤잖아요? 그리고 갯벌에 가 보면 밀물에 물 들 때 평평하니까 2키로 3킬로 갯벌에 순식간에 물이 들잖아요? 갯벌이 길어서 그렇지 저 끝하고 바로 앞에 하고 높이 차이는 얼마 안 나요....... 여기 백사장도 마찬가지잖아요? 물가하고 여기하고 높이 차이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평평한 데서는 물이 들고 난 다음부터 수위 올라가고 - 물이 찬 다음에 물에 속도 붙기 시작해요. 여기 강바닥도 거의 평평해서 물 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라 생각을 했고 위에서 본류 닿기 전에 빠져 나올라고 얼마나 긴장을 했다고요?'
"아 그게 그렇구나....... 우리 어릴 때 바닷가서 살 때 생각해 보니 금방 알 수 있겠네....... 그 긴 갯벌에 물 한번 들기 시작하면 순식간 아니더라고? 일단 물이 차고난 다음부터 수위가 올라가는 것이 맞네......."
‘아, 그라고 제가 놀란 것이 - 그 비가 그렇게 왔는데도 비 소리가 그렇게 안 나더라고요. 저도 백사장에서 비 맞고 텐트치고 자보기는 처음인데 - 산에서 자면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거든요. 그런데, 화-아! 여기 백사장은 그 큰 빗방울이 떨어져도 모래가 소리를 완전히 흡수해 버린 것 있지요?’
“그러게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잠을 자면서도 비 소리 못 들은 것 봐라?”
“나는 비 소리를 듣기는 들었는데 소리가 거의 안 들리더라고? 가랑비 쪼깐 온 줄로 알고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잤다니까요?”
“큰일들 날 뻔 했어, 텐트가 천으로 되어 가꼬 소리도 거의 안 나고- 백사장 한 가운데다가 텐트치고 자면서 강에 물 불어 난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으니....... 하여튼 이번 일로 경험 삼아서 강가 모래밭에 텐트치고 잘 때는 특히 조심을 해야겠다. 큰 산 밑에 계곡 밑에 자리 잡을 때는 더더욱 그럴 것 같고”
“도착해서 텐트 칠 자리 잡을 때 - 아부지 말씀 안 듣고 물 가 쪽으로 쳤다가는 큰 일 날 뻔했어, 나는 엥간하면 물 가 바로 옆쪽으로 치고 싶더라고, 그란디 노인네들 걱정하시는 것도 맘에 안 편할 것 같아서 중간쯤에 쳤더니만 그것도 식구들 살리는데 한 몫을 했고만요?”
“중간에다 쳤으니까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나왔쩨, 물가에 있었다고 해봐요- 그 거리가 100미터도 훨씬 넘는 거리였잖아요? 물 쫓아 들어오는 것이 아조 순식간이더라고- 두 노인양반하고 애기들 둘에다가 그 많은 짐 옮길라고 했으면 ....... 아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만요- ”
“아 그래서 옛날부터 어른들 말씀 들어서 손해날 것 없다고 안 하디야?”
“영자 니가 물가에 치자고 끝까지 고집 안 피운 것도 한 몫 했따. 영자가 저 것이 막내가 되야 가꼬 고집 한 번 피우면 또 얼마나 쌘디-?”
“하하하하-” - “하하하하-” - “호호호호- ”........
"그나저나 천만 다행이다. 아직까지도 소름이 다 끼친다."
“가다가 하동 군청에 들려서 수박 한통하고 음료수나 한 박스 사주고 가까?”
‘그럴까요?’
나중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영순이이모-이모부(홍서방)가 시댁에서 나와 합류하셔서 ....... 하동군청에 보답을 해야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더니 -
홍서방 : 시끄럽소-마. 내가 바로 하동-대표 아인교? 내한테 잘하소 - 내한테만 잘하면 하동군청한테 잘 한거나 마찬가지니께네-
"하하하하- 하동 사람 잘 났어 정말......." ....... .......
그래도 하동군청에 성의표시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는 것을.......
하동군청은 지나가는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데 갈려면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가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알고 있다가....... 식구들 중에 나중에 그 쪽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기회 되는 사람이 사례를 하기로 했다.......(나는 아직까지 그 쪽으로 지나간 적이 없고....... 우리 식구들 중에서 누가 그 쪽으로 지나갔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 글을 빌어 늦게나마 하동군청 공무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온 집안 식구들 복 받았으니까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새 인생 산다고 삽시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착한 일 많이 해야 겠네예?......."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들 아시지예?......." ....... .......
낮에 다시 와서 밝은 데서 불어난 강물을 보니 살아있다는 것이 다시 실감들이 난 것이었다. 온 식구들이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물 구경들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텐트를 물에 헹궈서 둑 위에다 말렸다. 여자들은 그릇들을 씻어서 -물기를 털고- 햇볕에 말려서 - 다라이에 넣고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텐트에 물기가 다 빠질 때쯤 해서 텐트를 걷어서 말았고, 짐들을 차에다 실었다.
식구들 마음에 더 이상 휴가에 대한 미련이 없어져버렸다. 원래는 2박-3일 일정이었는데 벌써- 그냥-빨리- 집으로 가자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물의 공포-강의 공포에 질려버려서 가능하면 빨리 물가에서 멀어지는 것이 -심리적으로-휴가의 최우선 조건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한번 호되게 질리면 - 일단,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리 벗어나야 공포가 가시는 것은 본능이다. 우리 식구들 심리가 그 때 그랬다고 - 지금 생각해도 - 그렇게 느껴진다. 텐트를 빨면서도 온 식구들이 물에 질려 있었다고 느껴졌다.
[여행의 마무리]
철수하는 길에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강을 보니, 거센 물결 - 바로 강이었다.
어제 저녁 때까지만 해도 평평한 작은 여울에 불과했는데- 하루 밤 사이에- 거침없는 강물이 되어 있었다.
백사장이 없어져버리고 물만 보이는 강을 보면서 혼자서 생각을 해보니 -
어제 강물만 본 사람들은 - 섬진강이 아주 쪼만한 강이라고 할 것이고.......
오늘 강물만 본 사람들은 - 섬진강이 아주 거대한 강이라고 할 것이라고........ 할 것도 같았다.
몇 년 후에 그 맘 때 - 지리산 계곡에서 야영객들이 밤에 잠자다가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60명인가 넘게 휩쓸려가서 실종되고- 결국엔 사망한 대형 사고가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150미터나 되는 하류 강폭에서 물 차오르는 것을 실감한 우리로서는 -바로 계곡 끝자락에서- 큰 비가 왔을 때- 그 물이 폭탄 터진 물처럼 - 밀려왔을 것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인들께 명복을 빈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그 때 공무원들이 비난을 많이 받았다. 마음 아픈 일이었다.
또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안전에 신경 쓸 일이다. 제일 안전한 방법은 교만을 버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이 글을 빌어서 .......
그 비 오는 날 섬진강 둑을 쫓아다니면서 욕을 먹어가면서도 야영객들을 깨워주신 “하동군청 공무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맡으신 자리에서 표시 안 나게 일하시는 많은 공무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린다.
미희하고는 그 후로 1년 있다가 양 가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나를 닮은 9살 아들과 미희를 닮은 8살 딸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준이하고 슬기는 벌써 데이트할 만큼 커버렸다.
가족이 행복을 느끼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
올여름에도 섬진강 백사장으로 우리 가족들이 휴가를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누라하고 애들 둘까지 챙겨서.......
꼬막만한 황금 재첩....... 넘실거리는 은어....... 백사장.......하늘에는 보름달!
좋은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이 즐겁고.......
아름다운 사연이 많은 사람은 삶이 아름답고.......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은 인생이 행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동군청 공무원 여러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