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리

가덕리

  • 가구수(인구수) : 359가구 (902명)
  • 자연마을 : 명덕,광포,신평
  • 마을의특징 :
    명덕은 밝은덕이 있고, 그 덕행이 밝은 곳이라 하여 명덕이라고 하였으며 사시사철 왕성한 밝은 기운이 나는곳.
    인근에 하동화력발전소가 있으며 가덕리 4개마을중 호수와 인구수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광포는 금남면 진정리에서 광포재를 넘으면 첫마을이라 옛날 구보가 간척사업을 하기전 개구석이 너무 넓어서 광포라 하였다. 하동화력 진입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고 넓은 포구가 농경지로 변하여 살기좋은 마을이다. 신평은 서기 1986년 7월 1일 광포마을에서 분동되어 행정마을로 독립했다. 독립한지 10여년 밖에 도지 않으나 호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전 이주단지와 더불어 제방 부지가 주택 밀집화 되어가고 있다. 예부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마을의 생긴 모습이 사람의 인체형극이라 정해지고 있다.
    볼거리로는 명덕은 못새미, 가운데 여, 까막꼬지, 자래목 , 신사이 몬당 , 새가마골 , 넙더리끝 , 가장골 , 선들바위 ,소댕이 , 구래섬 이 있으며,광포는 광포재,감티골 , 청용끝 , 선창끝 , 가매등 , 포광포수지 ,용 등산 , 용기미 ,광포들 신평은 목섬, 진악바리 , 오리골 이 있음

궁항리

궁항리

  • 가구수(인구수) : 456가구 (971명)
  • 자연마을 : 객길,궁항,신도,가린
  • 마을의특징 : 객길은 궁항리 4개마을중 한 마을이며, 객길과, 회목을 합하여 행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객길을 깨꺼리라고 부르는 어원도 있다. 이마을에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좋은일 이 생겼고 또 그 손님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마을이기도 하다. 타지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잘 산다고 하여 객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원래 이객길마을은 이씨, 백씨, 진씨, 임씨들이 먼저 이마을에 취락되어 살고 있었는데 하나 둘씩 가구가 불어나도 띄엄띄엄 살고 있어 마을 앞으로 남해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하동군 제1차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1977년도에 실행하여 지금은 마을이 보기좋게 구성되어 있다. 궁항은 마을 뒷산 정상에서 보면 양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활테 모양이고 앞 으로 연결된 군도는 활끈이 되며 마을 가운데로 뻗어내린 산능성은 활촉모양을 하고 있어 활미기, 또는 활목이라 부른다. 신도는 산줄기 생긴 모양이 마치 새가 날아가는 형극이라 새섬이라고 불렀다.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이 거의 이마을에 있으며 유동인구가 많은 마을이 마을의 주요 볼거리로는 객길의 회목 , 회목골 안 , 구암무골재와 , 객길 나루터가 있고,궁항은 궁항들, 성지봉 , 탕수배기 몬당 , 동죽골 솟나는 새미 ,, 너구리 얍닥 , 안골 , 강넘 , 연자설 등 신도는 땐섬(체육공원), 여수골 , 새들 , 정지 등 밑 이 있음 가린은 이주마을이다. 하동화력발전소 북쪽에 위치해서 금성간척이 되기 전 남쪽바다에서 보면 미남문 산이 가려서 가린개라고 불렸다. 하동화력발전소 증설로 현재의 위치로 집단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고포리

고포리

  • 가구수(인구수) : 180가구 (369명)
  • 자연마을 : 용포,고포
  • 마을의특징 : 용포는 옛날 두우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배암이가 바다로 헤워가는 것 같다 하며,간척이 되지 않은 옛날에는 달밤에 배를 타고 오면서 언 뜻 보면 배암이 파도를 치고 나가는 것 같다고 하여 배암개로 불렸다. 그후 일제시 마을 이름을 백양으로 개칭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현재 용포로 개칭 되었으며,고포는 북으로 두우산을 끼고 남으로는 갈도를 앞에 두고 동으로는 용포마을을 접하고 있으며 따뜻하고온화한 마을이다. 섬진강 하류 높은 포구라 하여 고포라 명명되었다. 주요볼거리로는 용포는 용포저수지, 용포들 , 안골저수지, 고포는 등잔설, 고포 방천 , 고포밖에 방천, 넙지부리 , 소바구 , 알산배기 , 사포당산 , 망디기 뻔덕, 두우산 봉수대 , 두우산 산성 , 장군발자국(거인)

갈사리

갈사리

  • 가구수(인구수) : 671가구 (1,419명)
  • 자연마을 : 서근,명선,내도,청도,나팔,연막
  • 마을의특징 : 서근은 갈사도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 지명은 서고내라 했는데 마을 형극이 쥐가 창고속에 들어있는 모양이라 한다. 지금부터 360년전 건 김해김씨 삼현파 판도판서 중시조로 한 김씨가 제일먼저 거주하였고, 그후 삼막곡 삼암종중 김씨가 살게 되었다. 간척전에는 갈사에서 육지로 나오려면 서근 나루를 건너야 했고, 당시 부산~하동간 화물선 왕래시는 주막집이 있어 아주 성황을 이루던 곳이다.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면서 갈사교가 놓여져 진정~갈사선의 길목이 되었다. 명선은 아주 옛날에는 섬이있는 갯가라 하여 섬동개라고 부르다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도는 1933년경 일본인 강구란 사람이 간척매립하기 전에는 갈도섬 중에도 또 섬이었다.
    마을앞에 아담한 섬이 하나 있는데 마을 생긴 형극이 사람이 양팔을 벌려 이 섬을 안고 있는것처럼 보여 안섬이라고 불리운다.
    청도는 1988년 청암면에 하동댐의(청암댐) 준공으로 이주하게되었으며 1993년 내도마을에서 분동되어 현재의 청도라고 하였음
    나팔은 섬진강을 끼고 서남단에 위치한 못과 마을사이로 흐르는 강의 협소한 곳을 나팔목이라 한다. 이 강사이가 아주 좁아서 썰물때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나팔부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나팔이라 하였다
    연막은 갈도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로 호수가 갈사 6개마을중 가장 많으며 마을앞 머구섬(일명 오동도) 은 마을 앞에서 보면 정말 조기 좋다. 마을이 남향으로 되어 온화한 마을이다. 옛날에는 해태 및 수산물로 소득이 높았으나 지금은 광양제철과 하동화력으로 인하여 별로 소득이 없음
    주요볼거리로는 탕건바구(바위), 산막골 , 산바래기 몬당 , 당산나무 가 있음 명선은 누운바위 , 노루목재 , 노루대가리 , 진낫끝 에 있음 내도는 부엉고지, 삿갓여 , 내도 뒷들 , 목섬 이 있으며,나팔은 진장산, 진느리끝 , 부안산 , 선창 , 목끝 , 굼턱 , 용우두림 , 노루목 이 있음 연막은 못 새미골, 오동도(머구섬) , 큰등(금성만 또는 갈사만) , 모섬 , 저땅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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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2-10-31 09: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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