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이동진 금남면장님 이하 직원분들 칭찬합니다
항상 금남면정을 위해 동분서주 발로 뛰는 이동진 금남면장님 이하 직원분들을 칭찬하기 위해 글월 남기고자 한다.
작년 여름은 무더위도 그러하거니와 가뭄 또한 극심한 탓에 농군들에게 여간 곤란과 애로가 형언 불가 정도로 상심과 한숨이 천공지추天空之錐라 할 것인데, 설상가상 마을 관정 모터가 과부하로 고장이 나서 논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말로만 들어오던 논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벌어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나니 감회가 경천동지의 지경이라 태초 이래 오직 천수답으로 하동 땅 금남면 일대에 농경을 시작해 오던 우리 선조들은 작년 같은 여름날 벼농사를 어떻게 지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래도 현대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일기예보가 가능하고 양수기 보급 등으로 훨씬 나은 환경에서 농경을 하고는 있다지만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문명의 이기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한계가 있을 터, 역시 농사는 하늘의 운명에 의존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할 것인데, 하물며 깊은 땅속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동력기가 있다 한들 고장이 나서 무용지물이라면 그 옛날과 별반 다를 게 무엇이리오.
우리 금남 미법마을 이장님, 어르신분들과 노인회장님 등 여러 분이 타들어가는 전답에 수수방관만 할 수 없어 면장님과 수회 면담도 가졌지만 예산 부족으로 차일피일하던 차, 뒤늦게 예산이 확보된 탓에 그나마 타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관정시굴 요청보다 기존 고장 관정 우선 보수에 방점을 두고, 그것도 그럴 것이, 이미 사용해 오던 관정 보수가, 신관정 시굴보다는 당연 우선순위라는 것인바, 이 점에 대해서도 관련 건으로 필자가 찾아가 독대한 자리에서도 면장님께서 친히 그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하여 밝히었듯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었다 사료되며 이동진 금남면장님 당신께서도 농경에, 물론 전업 종사는 아니지만, 공휴일이나 아침 저녁 시간대 잠깐 들일 나가시는 듯한데 우선 검게 그을린 얼굴이 그를 방증이라도 하듯 하였으며, 전언에 의하면 실제 문제 현장에 출장 나가서는 당신보다 연세 있는 어른이 한여름 뙤약볕에 머리에 모자가 없으면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당신의 모자를 벗어 어르신에게 건네는 경로사상에도 전혀 빈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고 그뿐 아니라 항상 지역주민과 마주치면 먼저 서슴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그러하고 나이가 한참 아래인 글쓴이한테도 먼저 인사를 하곤 하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님을 밝히는바, 그 모습은 필자가 고교시절 은사이던 국어교과목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 중 하신 말씀이, 자신이 사범학교 국어교육과 시절 은사라시던 수필, ‘인연’의 저자로 익히 알져진 피천득 님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는데 선생님은 처음에는 그가 교단의 스승이 아니라 학교 수위인 줄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항상 검소한 옷차림에 탈권위적 모드로 교직원이나 동료를 보면 먼저 인사를 하시던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나 뭐라나 그러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은 실제 외모 또한 우리 면장님과 흡사하다.
그러면 그 아래 부하 직원들의 면면은 또 어떠한가.
항상 민원인에 미소와 친절로 맞이하는 금남면민원봉사실의 터줏대감 왕언니, 가끔 차 한 잔 건네기도 하던, 이제는 민원봉사실에서 잔뼈가 굵은, 이웃집 마음 좋은 큰누님 같은 유난영 선생님.
글쓴이가 민원차 내방했다 중요한 구비물이던 선친 도장 미지참 건으로 귀가, 분명 민원인의 불찰이고 책임 있는 사안인데 전화로 내방하시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면사무소에 재차 방문치 않도록 비교적 근거리라 그런지 뜻하지 않게 불현듯 일부러 몸소 민원인 집으로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사회복지과 김덕경 선생님. 당시 경황이 없어 물 한 잔도 대접하지 못하고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코흘리기 시절 또래 동네 머스마들 주먹으로 제압하며 골목대장 행세를,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분명 사관학교 진학하여 휘하에 군단 병력을 지휘하고도 남음 직한, 소탈하고 듬직하고 하여 믿음직하여 항상 신뢰가 가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양팔 걷어 문제해결사 역할을 거뜬히 할 것 같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남자라면 한번쯤 수작을 걸어 봄 직한 여성상을 가진, 바쁜데 하동읍까지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방문하거나 전화할 필요 없도록 직접 해당 서류 작성 지원, 전화 및 팩스 대리 발송해주시던 배소현 산업경제과 직원분.
상속 등기 사항 서류 미비 건으로 다시 본인 집으로 돌아갈 필요 없게끔,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 없도록 전자민원발급기 발급하지 않게끔, 직접 하동군 법원에 전화를 걸어 이러저러한 사정 설명, 그 이름처럼 임진왜란 시에 군주인 선조에게 쓴소리 마다않고 충언 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모습처럼, 본인 등기부 기재사항 열람 내역 확인 요청하여 즉시 민원업무 처리 도와주신, 논리와 경험칙, 인과율에 기해 불필요한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미연에 상쇄시킨, 이는 곧 불필요한 국가적 손실- 물론 일개인의 손실이나 나아가 민원발급기 가동 전력 및 지면 잉크 인쇄 기타 기계 마모분까지 나아가 그 시간 개인이 자기 가계일로 경제활동을 하여 미미하나마 일정 소득 창출 기회로 그 소득에 대한 세율까지 합산한 경제적 가치를 포함시킨다면 국가적 이익이란 의미에서- 을 줄여 경제적 순 이익을 가져왔을 것인데 그런 기회비용의 불합리성, 비효율성을 익히 경험칙으로 터득하여 간소하게 재량적 사무적 판단을 내린, 같은 과 유성룡 선생님.
동면민원봉사실에 인감증명서 등록하러 갔다 인장에 성씨가 누락된 건에 관해 등록 거부된 사안으로 이후 필자 스스로 법제처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낸 사실이지만, 관련법 제5조에서 이미 법문의 주어가 ‘인장은 성명과 일치’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처음 관련근거법령을 그 하위 법령인 시행령으로 잘못 안내받은 건에 대해- 지금 생각하면 물론 관련 업무이나 법률전문가가 아닌 행정공무원이 그 정확한 법령명을 친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건 무리라 판단하지만- 글쓴이가 어필한 건으로 이후 전화통화에서 부언 불필요 그 성명에 관한 것을 그 직원분이 장황하게 나열하며 ‘관련법 제5조에서 말하는 성명이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ㄱㄴㄷㄹ…….’에서 필자가 중간 컷하고, ‘사회통념상 통상적인 상식을 갖춘 일반국민이라면 그 성명을 누구나 국가 공적부에 기록된 그 성과 이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누가 그 성명의 내용 파악을 위해 사무편람 뒤지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직원분는 또한 그 낭랑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되받아쳐 말하기를, “물론, 그 사회통념상…….”라고 하는 대목에서 물론, 인감증명서상 인장의 성명에 관한 세부사항 한정의 의미로 항변하였겠지만, 그 낭랑하고 카랑카랑하여 또렷한 음성은 마치 작은 체구의 낭랑15세 사춘기 미도래 변성기 전 미소년의 여성스러운 톤으로 그 옛날 신라 경주 화랑도 모집 입군식의 무리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싶은데, 황산벌 백제 적진에 무모하게 돌진하여 모가지가 날아가고 목 잘린 주검이 다시 그의 군마 안장에 매달려 피 흘리며 축 널브러져 신라 진영에 당도하니 그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의 승리의 단초 제공이라는 희생의 대가로 지하에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모습까지 순간 떠올렸는데, 그렇게까지 민원인에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직접 사무편람까지 뒤지고 하는 번거로움 마다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하여 자기 업무에 임하는 모습에서 신라 화랑도 10대 미소년 관창을 떠올리게 했던, 숙녀가 되기 직전의 풀잎 조각 같은 풋풋한 소녀티가 물씬 나는 깜찍한 인형처럼 보였던 민원봉사실 하경숙 선생님.
언어에 대한 이해가 빨라 민원인이 무슨무슨 건으로 방문하였는데라고 말하면 대번에 그 다음 이어질 일련 관련 사항을 일사천리로 파악, 원클릭으로 민원처리를 도와준, 눈과 귀가 어두운 연세 있는 어르신께는 자신을 낮춰 국민과 지역주민의 봉사자로서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는, 그 성씨 한韓씨가 말하는 것처럼, 글쓴이의 조모친 또한 그러했고, 분명 본관이 국내 유일의 청주일 것인데 국내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의 변을 빌리자면, 대한민국의 한韓의 유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비롯된 작품, 『천년의 금서』에서 저자는 중국 기원전 고서,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에서 최초로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을 발굴해 내는데, 고조선보다 훨씬 앞서는 동이족인 한후韓侯의 한 한자韓字에 시공이 정지, 작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직접 중국답사여행 중, 그 한후의 후예가 고조선의 준왕(청주 한씨)이고 위만의 침입으로, 이후 위만조선으로 명명되어 오지만, 당시 준왕은 난리 통에 산둥반도에서 도하, 서해를 따라 한반도 남쪽으로 피신, 삼한三韓의 모태로 묘사하고 이것이 곧 대한제국의 한韓의 원류이며 곧 상해임정과 해방 후의 대한민국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지론이었는데 이를 그가 한국사학계에 개진하였고 아직 그로부터 정식 답신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어느 지역 강연을 들었는데, 만약 사실과 진실이 그러하다면 그 한씨의 후예 중 한 분이 분명 글쓴이가 방문하여 제대로 된 민원서비스를 받은 셈이 되는 격이라 불필요하다 싶은 그 이름 앞에 붙는 사설이 도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의미에서, 뼈대 있는 양반 가문으로 우리역사에서도 고관직을 현대까지 맡아오던, 그런 서비스의 원천이 기원전 우리역사로 회귀하는바, 그 이름처럼 한 품을 의미하는지, 미를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장황한 사설을 연상케 한 민원봉사실 성실 공무원, 한아름 선생님. 미모로 치자면 절대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겠지만 하동군 공무원 중 버금으로 갈 법한- 딱히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출현 이래 지금껏 인간은 주어진 자원으로 어떻게 평온하게 먹고 사는가 하는 고민과 공포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강자가 약자를, 곧 강대국이 약소국을, 약소국의 자원을, 지배 가령 식민지배든지 제국주의가 착취하는 방식으로 역사는 발전하여 왔으며 각자 정부라는 중앙통제시스템을 갖춘 국가라는 모형으로, 굳이 서양의 사회계약이론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초기 단계 국가 체계에서는 처음에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경찰력과 국방력으로 보호하고 대신 그 속의 사람들은 그 반대급부로 정부에 일정 수확·소득의 재산을 세금으로 납부하여 소위 정부를 구성 단위로 하는 국가 체계가, 법을 만들고 그 시행을 위해 행정이란 문구로 행정부 내지 행정청, 행정기관, 나아가 그 내부의 구성원인 공무원에게 울타리 속, 곧 국가라는 경계 내 국민들로부터 수취한 세금, 국고 수입으로 임금을 주어 그들의 생계를 유지토록 하고 정부 또한 그 수입으로 국가를 운용하여 국토와 자원 및 국민을 법률과 행정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의 방식으로 지금껏 전 세계가 큰 맥락에서 흘러왔다 할 것인바, 전술한 금남면장님 이하 직원분들의 행정서비스를 되새기며 행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 거창하게 군더더기가 많았는데, 법집행의 행정으로서의 의미만 가진다면 공무원은 하나의 하명 수행 기계에 지나지 않을 터, 각자각기 논리적 추론적 합리적 판단을 하는 일개인으로 조직의 일부로서 분담된 수행 파트에 재량의 범위를 최대한 발휘토록 하는 것이 현대행정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데, 사견으로 ‘안 되는 걸 되게끔 하는 게 행정의 존재이유’라 판단하며 거기에는 기간의 도래, 서류기재상의 누락·착오·흠결 등등이 있을 것인데 전자는 법의 허용 범위 내 사후 승인, 즉 추인을 통해, 후자는 수정·정정·보완 등 공무원의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어서, 그런 걸 해결하라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월급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며 인류 역사는 관이 민보다 우위에서 민을 지배와 종속, 착취하는 방식에서 민의 의식 성장으로 민주주의가 성장 발전하여 왔고 소위 민주화 곧 제대로 된 민주주의화가 되어 이제 전세가 뒤바뀌어, 민이 관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를 청구권적 기본권이라 하는데 다시 말해 급부행정의 발달로 귀결된다 할 것인바, 우리나라도 지금껏 수많은 외침과 종속으로부터 혹은 왕조 이후 국내 독재자나 군부세력으로부터 압제를 받았으나, 우리역사에서 불의에 항거한 민중의 면면을 보면 전국 각처에서 거의 대부분의 하층민을 아우르는 망이·망소이·김사미·만적·임꺽정·장길산·홍경래·전봉준·이재수 등등의 저항운동은 이후 왜놈들의 국토 유린에 일심으로 삼일만세시위운동의 기저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런 한민족의 강인한 얼과 혼이, 물론 그 속에서도 적잖은 매국노나 파렴치한이 국민의 피를 거머리같이 흡입하곤 하였지만, 국난의 시기마다 저마다 민중봉기 형식으로 가장 최근에는 촛불혁명이 우리 한민족의 그러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해서 글쓴이가 주제넘게 몇 자만 더 깨작이다 끝을 맺으려 하니 아무쪼록 혹시 망언이 있다거나 눈에 거슬려도 속빈 강정이고 빈깡통이 요란하군 하고 생각하시고 널리 해량을 구한다.
일제강점과 외세의 등장, 해방과 남북 각각 미소군정, 일제강점기 친일잔존관료세력 재등용, 분단과 전쟁, 다시 분단 현재까지 남북국시대로 이르는 뼈아픈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질곡 속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슬픈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와 군부쿠데타를 거치면서 권위주의 정부의 철학의 빈곤 속에서 성급한 산업화가 낳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관료의 부패, 자본의 잠식, 빈익빈부익부 가속가중, 거기에 이르면서 민주주의는 신음하였고 자본주의는 지배와 착취를 일삼았으며 시대의 비극을 이미 역사에서 체험한 청년 노동자지식인들은 행동하는 지성을 피로 입증하였던바, 살아남은 자들은 그 채무를 떠안고 생을 살되 불의 앞에 숨지 말고 동료선배들의 정의로운 족적을 반추하며 부조리한 현실에 경계를 놓지 않아야 할 터, 두서본말 오리무중 점입가경 천학비재의 글월에 종지부를 대신한다.
망언다사.
2018. 11. 17.
2:42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