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단한번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맹목적인 사랑이 있었다]
"하루비님의 뛰어난 감성연출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글로 이런 멋진 글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대구 덕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ID가 InstantMusic인 네티즌이 인터넷을 통해 하루비의 장편 소설 "맹목사'를 보고 인터넷에 올린 서평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누구나 사랑 때문에 자신을 위험 속으로 내던지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루비라는 ID를 가진 여성이 인터넷 세이클럽(www.sayclub.com)에 연재한 소설 『맹목사』가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네티즌들을 경악과 충격 속에 빠뜨리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려한 문체와 허를 찌르는 스토리 전개, 치밀한 심리묘사 등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녀의 천재적인 작가성을 아끼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하사모(하루비사랑모임club.SayClub.com/@harubi)라는 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녀의 소설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자청해서 홍보에 나서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80년대 중반 군사독재의 음울했던 시대상 속에서 한 간호대생과 반체제 운동권 젊은이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독재 권력의 무서운 음모와 공작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성의 로망스를 하루비만이 쓸 수 있는 특유의 독특하고 신기어린 문장과 필체로 그린 무서운 감성 소설 "맹목사!"
이 소설에는 글을 읽는 순간부터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기가 있다.
과연 맹목사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지인 남자를 연하의 여인에게 빼앗기고 애타는 마음을 속으로만 삭이면서 늘 그 언저리를 맴돌았던 여자,
이제 그녀는 고문과 테러로 폐인이 된 남자를 데리고 맹목사로 떠난다.
두 사람이 떠나가는 그곳은 어디인가? 맹목적인 사랑의 종착역인가,
아니면 맹목적인 사랑으로 피를 흘리는 영혼들을 봉안하는 아름답고 슬픈 절의 이름일까?
[추천사]
나는 이 소설을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두 시간 전후 분량의 영화에만 익숙한 내가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은 일종의 사건이다. 소설을 읽더라도 극적인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읽다가 지쳐 도중에 덮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우연히 이 소설을 읽게 되면서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뛰어난 문장력과 경구 같은 대사와 지문들, 그리고 너무도 영화적인 극적 상황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학적인 관점을 떠나 영화적인 관점에 볼 때도 이 소설은 분명 욕심이 나는 스토리다. -이정국 감독(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암울했던 80년대 격동의 세월을 겪었던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과거'에 대한 기록을 솔직담백하게 거침없이 풀어낸 하루비의 글 속에는 당시 군사정권시절의 절대권력과 부패 속에서 상처입은 청춘들의 아픔과 가슴 시린 사랑,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이 놀랄 정도로 섬세하고 투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김동철(MBC프로덕션 PD)
하루비님의 소설 맹목사는 글 속에 나오는 그녀의 표현처럼 내게 '태초의 현기증' 그 자체였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간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루이제 린저나 카프카를 능가하는 화려한 문체와 서술 형식, 특출한 소재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스토리의 전개, 치밀한 심리묘사야말로 그 누구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바로 그 태초의 현기증이다. -방송작가 박원석 ID 스톤
그녀의 저격(狙擊), 처음에 저는 님이 우리들의 사치스런 영혼을 조준하신 줄 알았지요. 님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서 뜨거운 감성과 차거운 이성의 미묘한 심장부를 정조준하셨군요. 예리한 칼날처럼 번득이는 님의 글 속에서 사유하는 그 영혼들의 시간 배열대는 분명 새벽이리라 생각합니다. 하루비님의 글에서 생명의 고동(鼓動)과 여울, 그리고 이른 새벽의 신선함을 맘껏 들이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 ID 푸른옷소매
작가[하루비]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하루비는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뜻하는 작가의 인터넷 ID명이다. 2001년 11월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에 장편 『맹목사』를 연재하기 시작해 화려한 문체, 허를 찌르는 스토리 전개, 치밀한 심리묘사로 네티즌들을 충격과 경악 속에 몰아넣었다.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세이클럽(www.sayclub.com)에는 하루비의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수백명의 네티즌들이 모여 하사모(하루비사랑모임)를 결성하여 그녀를 후원하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길 꺼려하는 하루비는 현재 대구에서 조용히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책내용보기]
“당신은 전생에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의 늑대였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구름 위로 한 떼의 비둘기가 날아가는 듯한 영상이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당신… 당신이라니?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이 이인칭이 왜 이렇게 혼미하도록 감미롭게 들린단 말인가. 그리고 시베리아 늑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날 밤 나는 꿈 속에서 한 마리의 늑대를 보았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린 채 눈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걷고 또 걷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 늑대는 바람처럼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늑대는 내게 견딜 수 없는 큰 내적 고통의 근원이었다. 한편으로는 외로운 새 같은, 그 추운 늑대 한 마리를 가슴 속에 키우면서 나는 조금씩 내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슬픈 폐 안에 한 마리의 나비를 키웠다’고 했듯 나도 어쩌면 도떼기시장처럼 혼란스럽기만 한 내 가슴 속에 그렇게 한 마리의 늑대를 키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차르트의 음표보다도 더 아프고 고왔던 내 청춘의 질긴 순정들, 가슴 속의 늑대는 바로 내 자신이었고 내 삶이었다.
-본문 30p.
안인숙이 말한 맹목이라는 그 한마디는 비극의 클라이맥스였다. 마치 그녀의 핵심적 사고방식 같은, 맹목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 내 가슴에 무겁고도 슬픈 범종 소리가 ‘둥’ 하고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안인숙 역시 맹목이라는 말을 하며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격렬한 아픔을 참아내려는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그렇게 울어서라도 그 절망의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울음은 모든 혼신을 걸어도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린 영혼의 비극적인 절규로 들려왔다. 그런 안인숙의 안타까운 슬픔의 반란을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핏발이 서리도록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나약하고 섬세하기만 한 내 가슴에 안인숙의 말이 예리한 칼끝이 되어 마구 찔러대는 것 같았다. 울다가 지친 그녀는 잠의 나락으로 떨어져갔지만 그날 밤 나는 한순간도 잠들지 못했다.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는 그녀 옆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도록 밤을 꼬박 새웠다. 그들이 나중에 늙어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맹목적이었으므로 그들의 밀도된 사랑은 어쩌면 가장 완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 끝없는 비애로 다가왔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의 깊이 있는, 그들만 누리는 그 기쁨의 정서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본문 166-167p.
내 말에 연못 잔잔한 수면 위로부터 고개를 들어 김재문 선생이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 언제부턴가 태초의 현기증처럼 내 안에 가득하군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김재문 선생이 꿈처럼 나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냉정하고 침착한 그가 두터운 어둠이 주는 고요에 반쯤 넋이 나가 버린 것일까? 짙은 밤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 못가의 분위기는 세상의 그 어떤 말이라도 용서가 되고 남을 것 같았고 진지하고도 진솔한 모든 것이 그 속에 있는 듯했다. 거기다가 부드러운 공기의 감촉과 구름에 가리웠다 나타나곤 하는 신비로운 달의 모습. 아무리 큰 비극적인 현실이라도 뜨거운 심장의 영원한 사색을 막을 순 없으리라. 숲 속의 바람과 별들이 내려다보는 언어는 어떤 한 조각의 비밀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본문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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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상업이나 광고성 글이 아닙니다.
저희 하사모 네티즌 모두는 자진해서 이 감동적인 책을 많은 분들께 추천하며 관심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