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일기-권영신 : ‘귀농·귀촌’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자유의 또다른이름

자유에 대한 목마름 하나로

대기업의 보험회사 지점장이었던 권영신 씨는 평소 소신있는 성격으로 사내에서 인정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으로 오가는 잦은 출장과 기약 없는 퇴근 시간, 성과에 대한 책임감 등 일상의 반복에 지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늘 그에게 다그치듯이 다가왔다.
그는 “누구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내면에서 끊임없이 울려 나오는 질문들이 생길 겁니다. 그것의 해답으로 저는 자유함을 택하게 되었지요. 구속되고 정형화된 집단 속에서는 더 이상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라며 자신의 귀농·귀촌에 대한 동기를 밝혔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시작된 귀농·귀촌

그는 귀농·귀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차단하기 위해서 경남 하동에 먼저 땅을 사두는 과감한 결단력을 내렸다.
그리고 작목 선택과 재배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부산의 생태귀농·귀촌학교와 천안연암대학의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농업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작물에 맞추어서 교육 받지는 못했지만 천안연암대학에서 이수한 내용은 저에게 일명 농사꾼의 기질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습니다. 큰 틀을 읽고 나서야 어떤 분야라도 ‘나는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웃관계가 관건

농지를 구입하고 나서 작물에 대한 고민보다 이웃의 따가운 시선과 반응에 많은 상처를 입었던 권영신 씨.
정작 그가 선택한 농지는 산위의 산이라 불릴 만큼 험난한 위치에 자리했다.
주민들은 도시 냄새가 풍기는 그를 보고 무슨 농사를 짓겠냐며 그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다.
“처음 이곳은 밤나무가 가득 심겨진 땅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황무지 같은 땅에서 밭일 한번 하지 않았던 제가 새로운 농작물을 일구겠다니,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지 짐작은 갑니다.”
그는 과거 보험회사 지점장을 해본 잔뼈 굵은 경영 능력이 있었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했을 뿐임을 알고 조급해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지역에서도 얼굴을 알아보는 농업인이나 공무원이 있을 정도로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귀농·귀촌 초기의 외로움은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동을 대표하는 블루베리 열풍

하동에 블루베리 열풍을 불어 넣은 주역. 초짜 농사꾼인 그도 하는데 누군들 못하랴? 라는 간접적인 자신감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블루베리는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종목입나다, 초기 비용 뿐만 아니라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묘목을 심은후 3년은 지나야 수확할 수 있는 인내도 필요한 종목이잖아요. 그러나 당시 ‘생로병사의 비밀’ 이란 프로그램에서 블루베리에 대한 소개를 보면서 블루베리 이미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나 친환경 농원을 직접 운영하다 보니 더 큰 열정이 일었던 것 같아요”
라고 권영신 씨는 현재 하동에서 블루베리 작목반을 만들어 주민들과 소득원 개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귀농·귀촌일기-권영신 : ‘귀농·귀촌’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자유의 또다른이름

열정과 희망으로 일구어가는 산새농원

블루베리에 푹 빠져 전국의 블루베리 농가를 일일이 찾아 다니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방문하는 농가들마다 블루베리를 작목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권영신 씨도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블루베리를 작목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론적으로 내린 품종은 듀크. 하지만 듀크에 대한 국내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듀크를 심고 나니 농가를 방문할 때마다 모두가 듀크에 대한 안 좋은 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세미나에도 듀크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 못했지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그때부터 듀크의 장점만 생각하며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그는 지난번 수확한 블루베리가 평균 14.1브릭스를 기록하는 등 블루베리 재배에 있어서는 이미 중견 농업인이 돼 있었다.
블루베리 외에도 친환경매실을 기르는 재미 또한 쏠쏠한데, 친환경농업법으로 재배하는 매실은 작년에 수확도 하기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3일만에 전량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밖에 농장내에 포함되어 있는 야산의 고사리나 알밤도 홈페이지 판매에 구색을 갖춰주고 있다.
“총 4만㎡를 경작하다 보니 일손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부분 연세 드신 분들이어서 재배할 때 약간의 고충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분들도 저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식물에게 그 마음이 전달되어 더 잘 생기고 맛이 좋은 작물이 될거라 생각해요,”그는 하나하나의 작물에 마음과 정성을 쏟아낸다.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더불어 살며 안전하고 품질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의 귀농·귀촌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보금자리 황토집

산 중턱에 땅을 일구어 집을 지으려하니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했다.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서 장비 및 원자재를 가지고 오기 어려웠던것. 또한 흙집을 짓고 싶은 마음에 흙집교육을 다닐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그가 원하는 구조를 지을 시공자들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도면까지 그려가면서 만든 것이 바로 현재 살고 있는 황토집이다.
정갈한 멋과 기풍이 느껴지는 모양이 그의 모습과 생각이 투영된 듯하다.
두 아들과 이 집에 살면서 삶에 큰 변화가 일었다고 한다.
우선 마음에 여유가 생겨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운지 새삼 깨달았다고, 그리고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져서 부자(父子)간의 사랑도 회복되었다.
“얼마전 군대에 입대한 첫째에게 참 미안했어요. 예전에는 밥 한번 같이 먹기도 힘들었는데··. 이곳에 온 이후로 매일 식사를 함께하니 아이들과도 더욱 친숙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그저 행복합니다” 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인지상정

“솔직히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었겠죠. 그래서 이곳의 일부(825㎡)를 귀농·귀촌인의 집으로 만들 계획 중입니다. 무작정 귀농·귀촌을 결심하는 것보다 흔히 말하는 인턴식으로 미리 체험하게 하는 겁니다. 제가 자리잡기까지 도움 받았기 때문에 저도 연암대학의 귀농·귀촌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에 체험 농원과 하동 블루베리 센터를 만들어 블루베리 터전을 만드는게 제 바램입니다.”라며 계획을 털어놨다.
성장을 통해 단번에 이루겠다는 야심찬 포부보다 하나하나 꾹꾹 밟아가고 싶다는 그에게서 향긋한 봄내음인지 바다의 물내음인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졌다.


페이지담당
지역활력추진단 귀농귀촌담당 (☎ 055-880-2427)
최종수정일
2023-09-01 14:57:46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