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이별을 주제로 한 수많은 발라드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연인과 헤어진 '그녀'들은 왜 그렇게 밥도 못 먹고 야위어야만 할까? 실상 그럴까?현실은 다를 수 있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가수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中에서)
어떻게 보면 좀 더 현실성 있는 가사가 아닐까 싶다. 현실은 그리 애틋하거나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후 외로움과 공허함에 음식을 마구 먹게 되면서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불어나 휴가 나온 남자친구를 차마 만나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보았다는 20대 초반의 A양. 애인에게 차이고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비장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버려짐에 대한 비참함과 분노감에 다이어트와 폭식을 반복하게 된다는 B대리. 상사의 구박과 업무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늘 회사기숙사에서 우울감에 빠져 폭식하게 된다는 입사 2년차 C사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감정적 섭식, 내면의 허기짐
이들과 면담을 해 보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있다. 이들은 실상 그리 배가 고파서, 그리 맛있어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순간 견디기 힘든 음식에 대한 갈망(craving) 때문에 강박적으로 음식에 손이 간다는 보고가 대부분이다. 이는 감정적 섭식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감정적 섭식(emotional eating)이란, 외로움, 분노, 수치심, 우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직면하지 못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회피모델 (Heatherton & Baumeister, 1991)로 설명하고 있다. 정서회피모델은 자신을 위협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혐오적인 정서상태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상태에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에, 즉각적인 환경적 자극(약물이나 음식 등)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다른 의미 있는 사고들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폭식이나 거식증을 호소하는 섭식장애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에 관심을 집중하고 다른 의미 있는 사고들을 회피하려고 한다.
감정적 섭식을 할 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음식자체가 아니다. 그 순간에 음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감정적 효과'이다. 기분이 나쁠 때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편으로 그것이 우울함과 쓸데없는 생각들, 초조함 등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찾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식점에서는 절대 주문할 리 없는 그런 음식들을 참고 먹는 이유는 나쁜 맛이 나쁜 기분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무척 피곤한데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 퇴근 후 집에 와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중압감과 불안감을 완화시켜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별 후 배신감과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직면하지 못하고 허기짐에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진짜 배고픔이 아닌, 마음의 굶주림, 내면의 허기짐으로 볼 수 있다.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의 저자인 심리치료사 캐런 쾨닝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다이어트에 성공한다는 다이어트 심리학을 제안했다. 그녀가 정의한 '착한 여자'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굶주려 있는 '버려진 내면의 아이'인 셈이다. 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엄청난 긴장감 속에 살게 된다. 이들은 '날씬함=더 나은 인생을 산다=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라는 공식을 마음에 새기면서 늘 다이어트를 시도하나 허기진 마음에 직면할 때마다 음식으로 회피하기 쉽다는 것이다.
처벌이 아닌 나를 위한 선물로!
수치심은 심리적 허기의 핵심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음식은 부족하고 수치스러운 자신에게 내리는 혹독한 처벌이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무엇인가 열심히 해내려고 한다. 즉, 일중독이나 음식중독, 강박적인 운동, 다이어트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존재에 대한 결핍감을 행위(doing)로 대신 채우겠다는 보상심리라 할 수 있다.
심리처방전: 나를 위해 선물하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자. 하루에 한 가지씩 오늘 내가 한 일 중에 나 자신을 칭찬할 만한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칭찬받아 마땅할 거리를 발견했다면 그에 합당한 선물을 해보자.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채찍 대신 자아를 존중할 수 있는 당근을 주라는 의미다.
화가 난 마음 표현하기!
'분노의 식사'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분노도 심리적 허기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자신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의 요구에 맞추어 사는 사람에게는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다. 분노는 밖으로 표출되거나 스스로에게 향할 수 있는데 여기서의 폭식행동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나 정말 화가 많이 났거든. 제발 나 좀 챙겨주면 안돼?"의 메시지인 것이다.
심리처방전: 감정 털어놓기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들들 볶지 말고 조금은 더 이기적으로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놔 보자.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사실은 더 사랑받고 더 인정받는 쉬운 길임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음식을 대신할 진정한 친구 찾기!
외로움 또한 심리적 허기의 대표적인 감정이다. 단절되고 버림받은 느낌, 즉 외로움을 경험하게 되면 어딘가 소속되어야겠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이때 먹는 행동 자체는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는 순간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음식이 주는 위로는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것 이상의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이들에게 음식은 외로움을 잊게 해 줄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심리처방전: 음식이 아닌, 타인과 함께 하기
만약 혼자 은밀히 무언가를 자꾸만 먹으려 한다면 그것이 외로움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벼운 운동이나 취미활동으로 관심사를 넓혀 보자. 더불어 타인과 함께 하는 활동으로 공감, 지지를 받으면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든든한 마음의 상태를 얻을 수 있다.
혹시, 나는 정상체중이어서, 오히려 마른 체형이라서 안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체중은 정상이지만 이러한 감정적 섭식의 메카니즘을 경험하고 있다면 '날씬한 뚱보', 잠재적 섭식장애자'를 의심해볼 수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먹고 싶을 때는 스스로에게 잠시 말을 걸어보자.
나의 신체 중 어느 곳이 반응을 보이는지, 현재 나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자. 식욕과 허기의 진짜 원인은 감정에서 온다.
참고 자료
식욕버리기 연습 : 마리아 산체스 지음 / 송경은 옮김 / 유은정 감수 / 한국경제신문
다이어트 심리학 : 캐런R. 쾨닝 지음 /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칼럼니스트 : 조혜현 임상심리전문가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